필자를 포함한 4명의 일행이 타고 있는 잠수함은 하버 브랜치 해양 연구소 소속의 존슨―시―링크 호였다. 이번 잠수는 이 연구소의 생물의학 해양 연구실 활동의 일환으로 계획된 것이었다.
존슨―시―링크호는 어딘지 하늘을 나는 물체를 연상시키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2차 대전 중에 연합국 전투기 조종사들의 훈련용으로 쓰였던 저 유명한 모의 훈련용 전투기 링크 트레이너를 만든 에드윈 링크가 이 잠수함을 개발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심해 잠수와 비행은 사실 일반적인 생각보다 더 깊게 관련되어 있다. 1953년 당시로서는 최저 잠수기록을 세운 잠수정 트리에스테를 발진시킨 오귀스트 피카드는 원래 기구 전문가였다. 그는 1932년에 지상에서 25m 높이의 성층권 속까지 올라가 우주선(線)을 추적했다. 그 후 피카드는 기구 안에 채운 물질의 무게를 조절함으로써 높이를 조절하는 원리를 잠수정에 도입했다. 피카드가 등장하기 이전의 잠수정들은 물 속으로 가라앉기 위해 물보다 무겁게 만들어졌다. 그러나 피카드의 잠수정은 물보다 가벼웠다. 추를 이용해서 자체 무게를 늘려 물 속으로 가라앉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53년 9월 피카드는 최신기술로 만든 트리에스테를 해저 3140m 지점까지 잠수시켰다. 몇 년 뒤 트리에스테는 미국 해군의 소유가 되었고, 1960년에는 오귀스트 피카드의 아들인 자크 피카드와 해군 대위인 돈 윌시가 트리에스테를 타고 태평양 해 1만911m까지 내려감으로써 생명계의 가장 낮은 곳까지 잠수하는 데 성공했다. 그랜드 캐니언을 일곱 개 겹쳐놓은 것만큼 깊은 이곳은 창조주가 정한 바다의 가장 밑바닥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트리에스테만큼 깊은 곳까지 잠수한 잠수정은 없었다. 자크 피카드와 돈 윌시는 바다 밑바닥에 20분간 머물렀다.
이 두 사람의 해저여행에 비교하면 해저 300여m에 불과한 필자 일행의 여행은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필자에게는 충분히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필자가 본 바다 밑의 첫 번째 인상은 어둡다는 것이었다. 너무 어두워서 어둠을 손으로 만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이세상의 것이 아닌 것같은 그 어둠을 바라보고 있으면 대서양의 무게를 실감할 수 있었다. 우리 머리 위에서는 멕시코 만류가 바하마 군도를 통과해 흘러가고 있었고, 우리 잠수정이 자리잡고 있는 계곡은 푸에르토리코 해구를 향해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었다.
한동안 잠수정 안에 빛이라고는 계기판에서 나오는 희미한 붉은 빛밖에 없었다. 그런데 창밖을 내다보니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뭔가 반짝이는 것들이 화살처럼 빠르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빛을 내는 생물들이었다. 길다란 밧줄처럼 생긴 관해파리들이 깜박이며 우리 곁을 지나갔다. 그밖에 빗해파리도 있었고 심해의 개똥벌레격인 요각류 생물들도 있었다.
이들을 보고 있자니 생물학자가 현미경으로 보기 위해 슬라이드 위에 떨어뜨린 물방울 속에 들어와 있는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 주위가 어두운 것으로 봐서 최초에 생명을 탄생시킨 원시 수프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몇 분이 지난 후 잠수할 조종사가 전등에 전원을 넣었다. 대낮처럼 밝은 빛 속에서 커다란 상어 한 마리가 잠수함에 달려 있는 비디오 카메라 한 대를 공격하는 것이 보였다. 바다 밑 얕은 곳에 사는 큰 물고기는 정기적으로 이렇게 깊은 곳에 들른다는 사실은 이미 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 있다. 존슨―시―링크 호가 내려갈 수 있는 가장 깊은 곳인 해저 914m 깊이에도 고래 돌고래 심지어는 거북까지 나타난다고 한다.
바닥에서는 해면과 산호가 자라고 있었다. 이들 중 일부는 이 깊이에서만 발견되는 것들이다. 게를 잡기 위한 덫이 우리가 숨쉬며 사는 세상의 상징처럼 바닥의 모래 위에 놓여 있었다.
저 멀리에 보석처럼 고가로 취급되는 검은 산호 덩어리가 보였다. 우리가 있는 곳보다 조금 높은 곳에 살고 있던 검은 산호는 벌써 사람들이 다 따버려서 거의 남아있지 않다. 깊은 밤이 되면 아주 아름답게 반짝이는 검은 산호를 갖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많은 생명체들이 이렇게 깊은 곳에서 살고 있는 것은 위쪽에 사는 무서운 육식동물들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몸에서 빛을 내는 생물들도 사냥감을 노리는 육식동물들을 따돌리기 위해 빛을 이용한다. 이들은 갑자기 밝은 빛을 내쏘아서 육식동물들을 놀라게 한 다음 그 틈을 타 도망친다. 때로는 자신들이 사냥꾼으로 돌변하여 사냥감을 끌어들이기 위해 빛을 이용하기도 한다.
하버 브랜치에서 근무했던 과학자 그랜트 길모어에 따르면 이 연구소는 지금까지 잠수를 할 때마다 거의 매번 전혀 알려져 있지 않던 생물을 좀 더 자세히 연구함으로써 새로운 사실을 밝혀낸 경우도 있었다. 1987년에 하버 브랜치의 생물의학 해양 연구실장인 셜리 폼포니는 디스코더미아 디솔류타라는 이름의 심해 해면 샘플을 채취했다. 그의 동료인 사라스 구나세케라와 로스 롱글리가 이 샘플에서 어떤 화학물질을 분리하는데 성공해서 ‘디스코더블라이드’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 물질이 세포분열을 막는 것이 관찰되었다. 스위스의 제약회사인 노바티스 파르마 AG는 98년에 하버 브랜치와 협정을 맺고 이 물질을 항암제로 개발해서 시판하기 시작했다.
디스코더블라이드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희망을 안겨준다. 지구의 4분의 3은 물로 구성되어 있다. 인간들에 의해 더렵혀진 육지와 달리 물 속은 아직 자연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미지의 세계이다. 지구의 바닷속에 대해 알려져 있는 것보다 달표면에 대해 알려져 있는 것이 오히려 더 많을 정도이다. 어쩌면 바다는 인간이 도움을 청하고 기댈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인지도 모른다.
▽필자:로버트 스톤=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