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큰 부정」먼저 척결돼야…

  • 입력 1999년 6월 13일 19시 53분


정부가 공직기강 쇄신 차원에서 내놓은 ‘공직자 10대 준수사항’은 공무원들이 각자 생활하면서 공직윤리면에서 지켜야 할 일과 해서는 안되는 일을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 이를테면 직무와 관련된 단체나 업체에 경조사를 고지해서는 안되며 3급 이상의 공무원은 아예 축의금이나 조위금도 받을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향응이나 골프접대는 물론 5만원이 넘는 선물을 주고받는 일도 금지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정작 이를 지켜야 하는 공직사회에는 긍정적인 수용의 자세보다는 냉소주의적인 분위기가 더 넓게 번져있는 것 같다.

‘10대 준수사항’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공무원 중에는 “전국의 공무원 수가 한 두명이 아닌데 단속이 제대로 이뤄지겠느냐”며 실효성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또 “민원부서 혹은 고위직에나 상관있는 문제지, 다른 공무원들은 별로 해당되는 사항이 없다” “가뜩이나 피곤한 일이 많은데 스트레스 거리가 한가지 더 늘었다”며 아예 고개를 돌려버리는 공무원도 적지 않다는 얘기다.

정부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듯이 이번 ‘10대 준수사항’ 제정은 ‘옷 로비’사건으로 크게 흔들리고 있는 공직사회의 분위기를 다잡기 위한 것이 목적이다. 준수사항 안에 고급의상실 출입을 금지하고 고위공직자 부인모임을 해체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된 것은 이번 준수사항 제정이 다분히 정치적인 고려와 함께 즉흥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공무원들의 시큰둥한 반응이 ‘옷 사건’에 대한 공무원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반영하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고 본다.

‘옷사건’ 등 잇따른 지도층 인사 스캔들이 시사하는 바는 한마디로 권력과 그 주변 사람들이 아직도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이들은 일이 터질 때 요리조리 잘도 책임을 피해 가는 반면에 나머지 공무원들은 그 때마다 국민의 눈총을 받으며 애꿎은 ‘희생양’이 되고 만다는 피해의식이 공무원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는 것이다. 정부가 지난주 총리주재로 고위공직자들의 도덕성과 몸가짐을 강조하기 위해 마련한 공무원 교육 장소에서는 강연 도중 객석에서 ‘흥’하는 코웃음 소리까지 나왔다고 한다. 이 역시 공무원 사회에 팽배한 냉소주의의 단면을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는 ‘10대 준수사항’의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 공직기강 대책보다 먼저 이뤄져야 할 것이 바로 권력 상층부의 뼈를 깎는 자기쇄신과 반성이다. 이와 함께 ‘의혹’ 또는 ‘설(說)’이라는 이름의 베일에 가려져 있는 ‘옷 사건’은 물론 고관집절도사건 최순영리스트 원철희리스트 등에 얽힌 고위공직자 정치인의 부정과 부패의 실상이 철저히 규명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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