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LG 이정길, 1군데뷔전 첫승

  • 입력 1999년 6월 14일 19시 21분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속을 태우신 부모님, 등판 기회를 준 감독님, 그리고 코치님들….』

13일 청주야구장 기자실. 1m85, 90㎏의 ‘거구’가 기자들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조차 못한 채 어린애처럼 마냥 울먹였다.

LG오른손정통파투수이정길(26·사진).96년1차지명선수로 프로 4년생인 그에게 있어 이날은 바로 1군 데뷔전을 치른 날. 가히 ‘인생유전’이란 말이 어울릴 이정길의 희비쌍곡선은 연세대 재학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년선배인 문동환(롯데)과 동기생 임선동(LG→현대)의 그늘에 가려 등판기회조차 잡기 힘들었던 그는 실업 현대 피닉스의 창단으로 선수들의 몸값이 폭등함에 따라 당시로선 팀내 사상 최고 계약금(3억8천만원)을 받고 입단했다.

그러나 호사다마였을까. LG의 탄탄한 투수진을 뚫지 못하고 첫 해를 2군에서 보내게 되자 그에게 기대를 걸었던 주위에선 온갖 비난을 쏟아부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듬해인 97년초에는 오른쪽 어깨 이상으로 수술을 받았고 이후 재활에만 매달려 왔다. 지난해 시즌 막판에는 잠깐 1군에 올라가기도 했지만 역시 마운드에는 오르지 못했다. 올초에는 몸이 덜 만들어졌다는 이유로 오키나와 전지훈련에서 중도탈락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그에게는 고액의 계약금만 챙긴 ‘먹튀 선수’라는 불명예가 항상 따라다녔다.

그러나 이런 그에게도 천재일우의 기회가 찾아왔다. 막강 왼손타선을 자랑하는 LG지만 올들어 단행한 투수진의 세대교체가 미흡하다고 느낀 천보성감독이 꺼낸 ‘비장의 카드’속에 그가 끼어 있었던 것.

착실한 재활훈련으로 이제 공을 던지는데 아무런 통증도 느끼지 않는다는 그는 결국 13일 데뷔전을 감격의 승리로 이끌며 4년간 꾹꾹 눌러왔던 울음보를 터뜨리고야 말았다.

〈장환수기자〉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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