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 (142)

  • 입력 1999년 6월 14일 19시 21분


위에다 마른 장작들을 얹고 가끔씩 송진이며 남아있던 나무의 진액이 지글거리며 불 속에서 들끓는 걸 보기도 하고 탁탁거리면서 나무 껍질이 튀어서 고무신 신은 내 맨발 등에 떨어지기도 했죠. 앗 뜨거! 하고 움츠리면 당신은 손가락을 입에 넣었다가 내 발등에 문질러 주었어요.

덴 데는 침이 젤이야.

에이 더러워.

아궁이에 불길이 가득차고 그 불빛이 우리 얼굴에 어른어른 비치고 주위는 차츰 어두컴컴해지는데 나는 아늑하고 나른해져서 당신의 등 뒤에 머리를 기대지요. 등판을 통해서 허파를 채웠다가 빠져나가는 숨소리며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려와요. 나는 당신 등 뒤에서 어른대는 불빛에 길게 자란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뻗친 걸 보고는 어쩐지 쓸쓸해졌어요. 나는 당신의 뒤꼭지에 그야말로 제비 꼬랑지처럼 삐져나온 머리카락을 쥐어 흔들었어요.

머리 자란 것 좀 봐. 이발해야겠네.

어어 아프다니까.

그 비가 밤새 오던 날, 내가 당신의 머리를 잘라 주던 생각이 나셔요? 당신의 웃통을 벗기고 무릎 앞이랑 궁둥이 밑에다 신문지 깔아놓고 보자기를 어깨에 둘러주고 갑갑할테니까 손에 거울을 들려 줬지요. 나 예전에 친구들하구 서로 커트를 해주던 솜씨가 있어서 별로 걱정하지 않았어요. 당신이 쓰던 양면 면도날 하나만 엄지와 검지 사이에 쥐면 되었으니까. 한 손을 빗처럼 벌려 당신의 머리카락을 물듯이 잡고선 면도날로 살살 그어 내려가면 가지런하게 잘렸죠. 그런데 가위로 자르면 단면이 싹둑 잘리니까 그렇지 않은데 면도날로 잘라서 그런지 머리카락 끝이 불빛에 반사되는 거예요. 머리를 움직일 때마다 반짝거리는 거예요.

음 솜씨가 괜찮은데.

하면서 거울을 들고 머리를 이리저리 둘러보던 당신이 말했어요.

그런데 이건 뭐야. 반짝 반짝 하는게….

면도날로 자르면 그래요. 보기 좋잖아. 머리에 별이 내려앉은 거 같애.

나는 당신의 등뒤에 무릎을 굽히고 반쯤 주저앉은 자세였고 당신은 내 앞에서 거울을 들고 보다 낮은 자세로 앉아 있어서 거울 속에는 우리의 얼굴이 위 아래로 떠올라 있었어요. 당신은 잠깐 말없이 거울을 들여다 보았어요. 어쩌면, 그건 내가 먼 훗날에 완성하게 될 우리 두 사람의 초상과도 같은 구도였지만. 당신이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누구나 머리가 단정하게 깔끔해지면 그건 변화를 의미해요. 일상도 그렇고 무엇보다도 복장이 바뀌게 되거든요. 당신은 슬그머니 거울을 내리고 이번에는 등뒤에 사실적으로 있던 나를 돌아다 보았어요.

나 곧 떠날게….

가슴이 철렁했지요. 내가 먼저 이야기할 줄 알았는데. 우리 둘을 여기에 남겨두고 얼른 다녀오라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요.

언제요?

모레나 글피쯤?

나는 신문지 위에 흐트러진 당신의 머리카락들을 손가락을 갈퀴처럼 펴서 그러모았어요. 앞과 뒤에 흩어진 머리카락을 모으니까 보기보다는 한 줌도 채 못되었지요. 내가 그걸 움켜쥐고 어떻게 했는지 알아요? 글쎄 아무 생각두 없이 밖으로 나가 아궁이의 양철판을 들치고 벌겋게 숯이 되어 남은 불 속에 조금씩 집어 던졌어요. 작은 불길이 확 오르면서 지지직 하고는 동물성이 타는 냄새가 났어요.

<글: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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