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밀레니엄 D-200]핵폭탄 개발「맨해튼 프로젝트」?

  • 입력 1999년 6월 14일 20시 29분


유사 이래 그처럼 많은 세계 일류 과학자들이 하나의 목적 아래 움직인 적은 없었다. 원자의 구조를 밝혀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덴마크의 닐스 보어, 역시 노벨상 수상자인 이탈리아 출신의 엔리코 페르미, 헝가리계 수학자 폰 노이만, 유태인 물리학자 에드워드 텔러 등 당대 최고의 과학자들이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닐스 보어(1885∼1962)는 39년 초 독일인 친구 오토 프리시로부터 독일이 핵분열에 성공했다는 말을 듣고 가장 먼저 미국의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미국의 망명 과학자들이 정부에 원자폭탄제조를 제안하도록 계기를 제공한 셈이다.

그 후 그는 덴마크로 돌아갔다가 나치독일이 침공하기 직전 지하독립운동단체의 도움을 받아 극적으로 영국으로 탈출했다. 그리고 곧이어 영국의 다른 과학자들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원자폭탄제조에 동참했다.

로스앨라모스연구소의 책임자였던 로버트 오펜하이머(1904∼1967)는 그 드라마틱한 생애 때문에 원자폭탄개발 역사와 관련해 가장 많이 거론되는 인물이다. 그 자신이 뛰어난 이론물리학자였던 그는 리더십을 인정받아 로스앨라모스연구소의 제1대 소장이 됐다.

종전 후 그는 ‘인류과학사에 빛나는 대사업’의 영웅으로 국민 앞에 나타났지만 곧이어 미국을 휩쓴 매카시선풍 때 과거 좌익그룹과의 연관이 드러나 심문을 받았다.

원폭실험이 성공한 뒤 지러드 등 많은 참가 과학자들이 원폭 사용을 반대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들이 낳은 아이는 이미 그들의 손을 떠난 것이다.

‘맨해튼 프로젝트’는 ‘과학자의 사회적 역할’이라는 화두를 세상에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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