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월 1일 0시 뉴질랜드의 수도 웰링턴에 세계의 시선이 집중된다.
날짜변경선에 인접해 2000년을 가장 먼저 맞는 뉴질랜드는 역사적인 순간을 전세계에 TV로 생중계할 예정이며 전세계 인구의 절반 가량인 25억명이 이 프로그램을 시청할 것이다. 98년 여름 예약을 시작한 뉴질랜드의 새해맞이 여행상품은 판매초기에 동이 났고 뉴질랜드 정부는 음악회 쇼 등 다양한 밀레니엄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간 뉴질랜드를 주목하는 또다른 시선이 있다. 전세계 컴퓨터 전문가들은 Y2K(컴퓨터 2000년 표기문제)가 뉴질랜드에서 어떻게 나타날지 긴장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남은 몇시간 동안 조금이라도 문제를 더 해결하기 위해서다.
새로운 천년을 맞는 축복된 날에 ‘20세기 최대의 발명품’인 컴퓨터는 Y2K란 복병을 숨겨두었다. 컴퓨터가 태어난 지 반세기 밖에 되지 않았지만 인간사회는 이 기계 없이 단 한순간도 꾸려갈 수 없을 정도로 컴퓨터에 의존하고 있다.
전산실의 대형컴퓨터나 집안의 PC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항공사의 관제장치에서 원자력발전소의 제어시스템, 통신회사의 전자교환기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모든 시스템은 컴퓨터에 의해 움직인다. 냉장고 TV 세탁기 등 가전제품도 내부를 열어보면 컴퓨터의 두뇌인 마이크로프로세서 칩이 들어 있다.
Y2K의 심각성은 컴퓨터가 숫자에 혼란을 일으키면 어떤 사태가 발생할지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나라마다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발생가능한 시나리오를 만들어 문제를 해결하고 있지만 누구도 ‘완벽’하다고 자신할 수 없다.
그래서 미국 적십자사에서는 ‘12월31일 하루 이틀전에 자동차 연료를 채워둘 것, 얼마간의 현금과 일주일치 생활필수품을 준비하고 취사도구 담요 장갑 플래시를 챙길 것, 정부의 안내방송을 듣기 위해 배터리로 작동하는 라디오나 TV를 마련할 것’ 등 민간인들을 위한 Y2K 대응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일부 시민단체는 도시를 떠나 컴퓨터문명이 미치지 않는 시골로 대피하라고 권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전산원 선우종성박사는 “정부 차원에서 분야별로 Y2K를 점검하고 현재까지 별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국민에게 막연한 불안감을 주고 ‘사재기’를 하거나 피난을 가라고 권하는 것은 더 큰 혼란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현재 국무총리실 주관으로 13개 중점 분야별로 매월 Y2K 해결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점검결과 5월말까지 금융 전력 원자력발전 운송분야는 Y2K가 거의 해결된 상태이고 산업자동화 국방 통신 수자원 행정분야는 문제해결의 마지막 단계인 시험운영 단계에 와있다. 그러나 중소기업 의료 민간선박 분야는 경영자의 Y2K에 대한 인식이 낮고 자금과 기술이 부족해 문제해결 진척도가 목표치에 미달했다.
정보통신부 신영수 Y2K상황실장은 “보건복지부에 전담팀을 구성해 병원 의료장비에 대한 Y2K 해결을 지원하고 연말까지 Y2K가 해결 안된 병원은 의료법에 의해 의료장비 사용을 금하거나 영업을 못하게 하는 방안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Y2K에 신경쓸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이 허다하고 정부에서 집계하는 Y2K 해결진척도도 대부분 해당기관의 신고에 의존하고 있어 100% 신뢰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올해 정부 및 공공기관이 Y2K 해결을 위해 쏟아붓는 예산은 2100억원. 민간부문까지 합하면 1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Y2K 해결에 따른 수요폭주로 시스템통합(SI)업체들은 IMF 불황을 거뜬하게 넘겼고 컴퓨터업체들은 때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기도 하다.
〈김학진기자〉jean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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