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육정수/공무원과 부음

  • 입력 1999년 6월 15일 19시 16분


사람이 죽으면 첫 절차가 친척과 친지들에게 이를 알리는 부고(訃告)작업이다. 상주(喪主)는 워낙 황망해 부고를 보낼 겨를이 없다. 그래서 부고는 장례를 돕는 호상(護喪)이 맡는 것이 원칙이다. 호상이 없는 경우에는 상주가 직접 한다. 부고에는 원래 사망자 이름과 사망원인, 사망연월일, 호상 또는 상주 이름 정도만 적었다. 지금은 발인날짜와 시간, 장지까지 알리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요즘 일정한 서식(書式)을 갖춰 부고를 보내는 경우는 드물다. 바쁜 세상이다 보니 전화를 가장 많이 사용한다. 여기에 신문의 부음란도 상당한 역할을 한다. 부음란은 사실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 지면인데도 서민들은 잘 이용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른바 힘있는 가문들만 활용하는 공간으로 잘못 알려진 측면이 있는 것 같다. 화려한(?) 일부 상주들의 면면 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상주인 공무원과 사업상 또는 업무상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은 부음이 무슨 ‘세금고지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심리를 기대하는 공무원도 없지는 않은 모양이다. 여기에 부조리의 소지가 있다고 보는 정부의 문제인식에는 일리가 있다. 행정자치부는 곧 총리훈령으로 만들 ‘공직자 10대 준수사항’의 후속조치로 공무원의 부음란 이용을 금지키로 했다는 소식이다. 공무원이 부음란을 이용할 때는 소속기관과 직책은 빼고 단순히 ‘공무원’정도로만 적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공무원들의 반응은 싸늘한 것 같다. 권력기관이나 이권부서에 근무하는 일부 공무원의 문제를 전 공무원의 문제로 확대시켰다는 반발도 있다. 부모의 부음란에 직함 하나 떳떳이 밝히지 못하는 보통 공무원의 심정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즉흥적 발상으로 공무원들의 마음만 상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육정수<논설위원>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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