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있는 이 아파트에 입주할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계약금만 내고 중도금은 연체해둔 상태였던 B씨에겐 더할나위 없이 좋은 거래였다.
그런데 막상 계약서를 쓰면서 어안이 벙벙해졌다. 중개업자는 B씨에게 “세금을 줄여줄테니 계약서를 두 종류로 쓰자”고 한 것. 하나는 거래 사실대로 9000만원의 프리미엄이 붙었다는 계약서였고 다른 하나는 프리미엄액수를 1000만원으로 낮춰 적은 계약서였다.
중개업자는 “9000만원을 한꺼번에 한 사람의 은행계좌에 입금할 경우 국세청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며 친인척 은행계좌 등에 분산해 입금해놓고 나중에 찾는 ‘돈세탁법’까지 B씨에게 친절하게 가르쳐줬다.
15일 아파트 청약 당첨자를 발표한 중견업체 C사의 분당신도시내 모델하우스에는 이동중개업자 100여명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모델하우스 안에까지 들어와서 호객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계약(21일)이 며칠 남았지만 분양권에 붙은 프리미엄이 최하 300만원에서 최고 1700만원.
중개업자 D씨는 “한 달만 지나면 프리미엄이 배 이상 붙을 수 있다”며 “빨리 사는 게 돈 버는 것”이라고 고객들을 설득하고 있었다. 양도소득세는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10만원 주면 세무사가 세금 한 푼 안내도록 처리해준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두 번 세 번 강조했다.
4월 경기도 구리토평에서 나타났던 청약통장 웃돈거래도 나타나고 있다. 용인 일대에선 지역 우선 1순위 청약이 가능한 청약통장의 경우 300만원짜리에는 500만∼1000만원의 프리미엄이 붙었다는 것. 또 400만원짜리 통장에는 1000만∼1500만원, 500만원 이상은 2500만∼3500만원의 웃돈이 붙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신규분양주택시장을 중심으로 아파트 분양시장이 회복기미를 보이자 서울과 경기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분양권가격이 급등하는 등 전매시장이 과열양상을 보이면서 이같은 탈법이 성행하고 있다.
문제는 당국이 마땅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는 것. 건설교통부 관계자는 “전국 부동산 시장이 아직 침체된 상황에서 일부 지역의 문제를 가지고 정부가 단속에 나설 경우 그나마 회생기미를 보이는 부동산시장 전체를 죽일 수 있다”며 대책 마련에 소극적인 입장.
주택업체 관계자도 “분양권전매를 전문으로 하는 속칭 ‘떴다방’이 몰려야만 실수요자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어 오히려 이들을 불러들여야할 입장”이라고 말할 정도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정부가 투기행위를 방치할 경우 부동산시장이 또다시 투기장으로 변질될 수 있다”며 “적극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황재성기자〉jsonh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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