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와 기소에 대한 권한을 독점한 검찰은 개개인이 단독관청인 검사들로 구성돼 있다. 검사 조직의 정점에는 검찰총장이 있어 모든 검사를 지휘감독할 수 있다. 검사들은 상명하복의 법률상 의무가 있다. 그런가 하면 법무부장관은 검찰총장과 검사에 대한 구체적 또는 일반적 지휘감독권을 가진다. 국무위원인 법무부장관은 대통령이 마음대로 임명하고 해임할 수 있다. 이 정도면 정권을 쥔 정치권력의 영향력이 검찰 수사권 행사에 미칠 수 있는 통로가 훤히 보인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가장 최근의 사건을 보라. 재벌그룹 회장에 대한 수사를 둘러싸고 벌어진 ‘고급옷 로비 의혹사건’은 핵심 인물이 당시 검찰총장의 가족이자 검찰총장 자신이다. ‘대북총격요청사건’에 버금갈 ‘파업유도사건’은 어떤가. 대검공안부장 검찰총장이 관련된 것은 검찰조직 자체가 혐의를 받고 있는 셈이다. 검찰총장은 그 사실을 법무부장관에게 보고했을까, 않았을까.
이런 사건은 누가 수사를 해야 하는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검찰이 수사를 한다고 하자. 그것은 마치 자신의 사건을 자신이 수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설사 아무런 편견과 간섭없이 정확한 수사가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그 과정이 바람직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절차의 공정성이 의심될 수밖에 없는 이런 경우는 피하는 것이 법리에 맞다. ‘이익의 충돌’을 회피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법치주의 국가원리의 요구이기도 하다. 특별검사제의 취지는 여기에 있고 새삼스럽게 재론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특별검사제는 ‘이익충돌의 회피’라는 이론상 법원리를 충족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현실적 효과도 가져다 준다. 최소한 정치적 사건의 절차적 공정성을 기대할 수 있고 의혹을 대폭 축소시킨다. 나아가 검찰의 화두가 되다시피 한 정치적 중립성 확보에 기여한다. 특별검사제는 그 자체로 유효한 권력통제장치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정당과 정권교체에 관계없이 정부여당은 한사코 특별검사제를 반대하는가. 몰랐던 것은 아니나 최근 그 숨은 이유가 드러났다.
동아일보 김창혁기자의 ‘기자의 눈’(14일자 A6면)에 의하면 특별검사제 수용은 검찰조직을 흔들어 놓게 되고 검찰이 흔들리면 정국을 제대로 운영할 수 없다는 것이 정부의 기본적 사고이다. 검찰권을 정권의 정치적 수단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자백한 것이다. 한마디로 어처구니없는 발상이지만 오히려 정부의 그런 생각이 특별검사제 도입의 결정적 근거로 원용될 수밖에는 없을 것 같다.
정부 여당이 현안인 ‘파업유도사건’에 한정해 특별검사를 임명하자는 태도는 특별검사제 도입을 요구하는 입장에서는 불만족스럽긴 하지만 희망을 갖게 된 격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치적 협상을 하는 셈치고 우선 그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일단 한시적이든 한정적이든 한번 특별검사를 임명하는 전례를 남기면 향후에도 동일한 요구가 관철될 여지는 넓어질 것이다.
정부 여당의 제안에는 경계해야 할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지 모른다. 이번 사건은 성격상 공안적 비밀의 베일에 겹겹이 싸여 있다. 황급히 임명된 특별검사가 거기에 뛰어들어 만족스러운 결과를 보여주는 데 실패할 가능성도 있다. 애당초 불순한 의도로 특별검사제를 반대한 정부와 검찰이 특별검사의 수사에 방관적이거나 비협조적일 때 실패의 가능성은 커진다. 그 후의 사태는 자연스럽게 예견된다. 정쟁의 소용돌이에서 탄생한 특별검사가 내놓는 불만족스러운 결과를 앞으로 특별검사제를 완전히 봉쇄하는 데 이용할 수도 있다. 특별검사제를 수용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차병직(변호사·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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