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 (146)

  • 입력 1999년 6월 18일 19시 28분


몇 달 전에 건이네 공장을 찾아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비슷한 시각인 이른 새벽에 영등포 역에서 내렸다. 신촌에 있는 명헌이네 화실로 찾아갈 생각이었다. 항쟁이 끝나고 광주에서 여러 사람들이 도피처를 찾아 서울로 올라왔을 때에 서로 품앗이 한다고 나도 여럿을 교통정리 해주었는데 호선이를 명헌이네 화실에 데려다 맡겨 두었던 터였다. 지금은 그들 두 사람 모두가 세상에 없다. 명헌이는 끝내 술꾼 홀아비로 살다가 심야에 달리는 택시에 치어서 갔고 호선이는 간암으로 작년에 죽었다.

신촌의 이대 입구에서 철로변을 따라 교외선 역사를 지나 연대쪽으로 넘어가는 갓길에는 비좁은 골목 사이로 나지막한 간이주택들이 붙어 있었는데 그래도 명헌이는 운이 좋아서 오래된 일본식 이층집에 화실을 얻어 들어 있었다. 인적이 없는 비좁은 골목으로 해서 길가에 있는 나무 판자문을 열고 삐걱이는 비좁은 계단을 오르니 낡은 문에 흰 물감으로 ‘화실’이라고 아무렇게나 갈겨 쓴 글씨가 보였다. 나는 가만히 문짝을 밀어보니 보통 때와는 다르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문을 두드리자 부시럭거리는 인기척은 들리는데 저쪽에서도 대답없이 기다리는 눈치였다. 하는 수 없이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명헌아 나다, 현우다.

하자마자 문 앞에 서있었던 듯 문이 열리면서 호선이가 이제 막 불을 켜고 눈이 부신지 잔뜩 찌푸린 얼굴을 내밀었다.

형 이게 웬일이오?

응 잠깐 들렀다.

실내를 둘러보니 길가쪽 창문 앞에 세워둔 칸막이 너머로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안에는 이젤이며 물감이며 화판과 화선지들이 어지럽게 널려있고 호선이가 자고 있던 군용 목침대가 보였다. 화물용 나무 포장상자를 엎어서 탁자로 사용했는데 그 주변에 어디 소극장에서나 주워 왔는지 나무로 만든 같은 크기의 유니트들이 의자 대신 놓여 있었다. 호선이와 나는 거기 마주 앉았다.

저 친구 오늘도 취했구나?

예, 조금 아까 들어와서 떨어져부렀소.

넌 어떠냐?

덕분에 이럭저럭 잘 지내고 있어라우. 우리는 시방 모다들 형님 걱정하고 있소.

그래 고맙다. 봉한이 잘 있대?

그런갑디다.

느이들은 잘 풀릴 것같든데….

일반 시민들허고 내란음모 사건 관련자들은 풀렸는갑디다만, 항쟁 주모자라고 수배된 사람들은 줄기차게 찾고 있습디다. 어찌 라면이라도 한나 끓여 드리까라오?

그는 구석에 붙은 싱크대 쪽으로 가서 냄비에 물을 붓고 곤로에 얹었다. 라면을 끓이는 중에 호선이는 예의 그 언제나 시무룩한 어조로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형님 신문에 난 걸 봉께 어마어마 합디다. 보따리를 크게 쌀 것 같든디.

글쎄 말야. 재수없게 됐어.

남우 말 허드키 하요. 앞으로 으짤라구 그러시오?

너 같으면 어떻게 할테냐?

그가 파와 계란까지 넣어 보기도 좋게 끓인 라면을 상자 위에 올려 놓았다.

<글: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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