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백낙환/국민 불편 부르는 醫藥분업 재고를

  • 입력 1999년 6월 22일 19시 25분


대한약사회와 대한의사협회는 입장 차이가 워낙 커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5월 10일 의약분업 원칙에 합의했다. 대학병원을 포함한 모든 병원과 보건소까지 의약분업 대상에 포함됐다. 이 합의가 발표되자 서울시의사회와 대한병원협회는 즉각 반대하고 나섰다.

가장 뒤떨어진 분야였던 의료서비스가 최근 병원간 경쟁이 심해지면서 개선되고 있다. 의료인들은 가능한 한 빠른 시간에 필요한 진료를 해주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을 하고 있다. 근자에 병원에 가본 사람들은 이같은 노력을 조금씩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병원이 환자들의 편의를 위해 진료 예약제도를 실시한다. 검사 때도 되도록 이동 거리가 적도록 배치한다. 투약 대기시간을 줄이고 검사 결과를 빨리 알려주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의약분업을 실시하게 되면 병원에 찾아와 처방을 받은 뒤 약품을 구하러 약국을 찾아야 한다. 모든 약국이 의사가 처방한 약제를 보유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여러 약국을 전전해야 한다.

더구나 주사제를 처방받았을 때는 병원에서 처방을 받아 약국에서 주사제를 산 뒤 다시 병원에 와 주사를 맞아야 하는 3중고를 겪는다.

약화(藥禍)사고의 가능성도 높아진다. 의사도 인간이기 때문에 바쁜 진료시간에 많은 환자를 진료하다 보면 약의 용량을 착각할 가능성이 생긴다. 병원 약국에서는 의사가 처방한 약의 용량이나 복용법에 이상한 점을 발견하면 바로 의사에게 확인한다. 대학병원에서 사용하는 약물 중에는 아주 드물게 사용하는 희귀약품이나 용량이 조금이라도 달라지면 환자를 위험에 빠뜨리는 약물이 적지 않다. 경험이 풍부한 병원 약사들은 희귀약품이라도 확인이 가능하지만 일반 약국에서는 그런 안전 점검을 기대하기 어렵다.

현재 병원에서 사용하는 약제의 종류가 워낙 방대해 약국에서 그러한 약제를 모두 갖춘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같은 성분의 약이라도 제약회사의 제조방법에 따라서 효험에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같은 밀가루로 만들었다고 해서 같은 빵맛이 나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의사의 처방과 기록된 성분만 같다면 약사가 다른 제약회사의 약제로 바꾸어 줄 수 있도록 정하고 있으나 약효 문제는 계속 제기될 것이다.

아직 시골지역에는 약국과 병원이 충분치 않다. 무의촌이 해결됐다고는 하지만 면단위 보건지소에 공중보건의들이 한명씩 배치돼 있을 뿐이다. 1개 면에 수많은 자연부락이 흩어져 있어 병원과 약국이 동시에 존재해야 가능한 의약분업은 농촌이나 산촌에서 진료의 어려움을 가중시킬 가능성이 높다.

원스톱 서비스가 강조되는 현대 사회에서 의약분업은 의료를 투스톱 또는 쓰리스톱 서비스로 악화시킬 것이 분명하다. 의약분업은 국민의 불편을 초래하고 자칫하면 의료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으며 더 많은 약화를 초래할 수도 있다. 지금이라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

백낙환 (인제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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