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보의 그런 독창적 그림세계가 엉뚱하게도 신동아그룹의 ‘그림로비’의혹에 휘말렸다. 물론 운보와 문제의 로비의혹과는 직접관련이 없다. 그럼에도 자신의 그림에 흙탕물이 튀는 것을 달갑게 여길 화가가 있겠는가. 사실 그림이 뇌물용으로 쓰인다는 얘기는 김영삼(金泳三)정부 시절 돈의 흐름을 투명화하기 위한 금융실명제가 도입된 후 서울 인사동 화랑가에서 나돌기 시작했다. 어떤 전직 대통령은 자금도피용으로 그림을 무더기로 사들였다는 소문도 파다했다.
▽그림의 예술적 가치보다 돈으로 환산한 가치를 더 중시하는 그릇된 일부 풍조가 그림로비를 낳은 셈이다. 이번 사건은 신동아그룹이 60억원으로 운보 그림 200여점을 사들여 그 중 일부를 로비용으로 제공했느냐 여부가 핵심이다. 이 의혹은 ‘이형자(최순영신동아회장 부인) 리스트’와 관련돼 있다. 검찰이 즉각 수사에 나서고 신동아측도 큰소리치는 것을 보면 ‘무혐의’를 자신하는 듯한 눈치다. 이번에야말로 검찰이 한점 의혹도 남기지 않는 투명한 수사를 할 것으로 기대한다.
▽다음에는 또 어떤 ‘리스트’가 나올까. 끊임없이 새로운 ‘리스트’를 만나야 하는 우리 현실이 너무 답답하다. 우리 사회는 이미 깊은 리스트 병(病)에 걸려 있는 것 같다.이병을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육정수〈논설위원〉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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