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관광은 민간기업이 추진하는 사업이지만 국책사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정부는 이 사업에 대해 ‘햇볕정책’의 성과라고 자랑해 마지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사건은 현 정부의 의지가 배어 있는 ‘포용정책’에 대한 조정을 부득이 요구한다.
▼ `포용` 일변도의 부작용 ▼
사실 포용정책은 접촉의 확대를 통해 북한의 변화를 꾀하고자 하는 정책이다. 경협을 포함해 인적 물적 문화적 교류의 확대는 남북관계의 긴장을 덜고 장차 신뢰를 쌓는 초석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정부의 구상이다. 그리고 북한이 객관적 환경적 조건 때문에 변화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전망이 전제로 깔려 있었다. 정말이지 북한은 사회주의 시장이 붕괴되고 내부자원이 고갈돼 지금과 같은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외부의 ‘수혈’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요컨대 우리에게 정책적 의지만 확고하면 북한의 변화를 그리 어렵지 않게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작년 금강산 경협사업이 발표되고 역사적인 금강산 관광단이 출항했을 때나, 2월 3일 북한이 남북 ‘정치 고위급회담’을 제의했을 때나, 금창리 핵의혹시설 방문을 수용했을 때나, 4자회담에 꼬박꼬박 출석하고 급기야 이번 베이징(北京) 회담이 성사되었을 때나 항상 대북 포용정책이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자찬했다. 서해에서 도발적인 월선 행위가 시작될 때조차도 처음에는 미온적인 대응을 하다가 사태가 커지고 국내 여론의 비판에 부닥치면서 단호한 대응으로 선회한 것도 따지고 보면 정책 성과를 망쳐서는 안된다는 조바심이 작용했을 것이다. ‘햇볕정책’의 주술을 북한에 걸어야 할 정부가 스스로 주술에 걸린듯 행동하고 있다.
대북 포용정책은 남북관계의 현 국면에서 볼 때 불가피한 대안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를 추진할 때 몇 가지 기준이 있다. 북한의 변화는 북한 스스로 변화를 추진해야 하는 것이지 우리의 희망사항을 가지고 예단해서는 안된다. 북한이 대내외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북한 정권 자체가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변화를 위한 정책적 변화를 가시화할 때 비로소 북한이 변화했다고 할 수 있다. 단지 객관적인 조건이 나쁘니까 북한은 변화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은 성급하다. 북한의 변화가 우리의 의도에 따라 쉽게 오지 않는다는 의미다.
▼ 때로는 단호함도 필요 ▼
포용정책이 접촉 확대를 통한 변화 유도라고 한다면 모든 남북교류는 접촉 확대를 도모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접촉은 단순히 물리적 접촉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남북한의 사업주체들이 상대방의 관행 규범 문화를 이해하고 조정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하다 보면 충돌이나 갈등이 발생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충돌과 갈등없이 조정은 가능하지 않다. 금강산 관광이 ‘철조망 관광’이라는 냉소에 유의해야 한다. 따지고 보면 이번 사건도 접촉을 최소화해서라도 사업부터 시작하고 봐야한다는 서두름이 빚어낸 일이다. 매일 1000여명이 관광하면서 이러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면 어리석은 일이다.
북한과의 당국간 대화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남북대화가 긴장을 덜고 평화를 보장하는 데 필요하다는 점을 모르지 않는다. 그렇지만 대화가 열렸다고 남북관계가 일순간에 호전되는 것이 아님은 남북대화의 오랜 경험이 말해 준다. 이번과 같이 서해 교전사건과 관광객 억류사건이 벌어지면 회담에 대한 정부의 태도도 보다 단호해야 한다.
햇볕정책을 통해 옷을 벗기려면 옷을 벗을 사람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벗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의 의도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이따금 강풍을 보내는 것도 햇볕의 귀중함을 알게 하기 때문에 나쁘지는 않다. 중요한 것은 포용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겠다는 의지이지 성과는 아닌 것이다.
류길재 (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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