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DJ 民心 제대로 읽나

  • 입력 1999년 6월 25일 18시 48분


김대중(金大中·DJ)대통령이 어제 최근 빚어진 일련의 사태에 대해 국민에게 죄송하다고 사과한 것은 때늦은 감은 있으나 다행스러운 일이다. 오늘의 위기를 부른 가장 큰 요인은 ‘옷로비 의혹’ ‘파업유도 의혹’ 등 겉으로 드러난 사건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그 사건들의 본질을 외면하려 하고 민심을 하찮게 여기려는 권력의 독선과 오만, 그리고 비판을 수용하려 들지않는 자기논리 합리화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일일이 그 실례를 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지난번 개각에서 여론의 지적을 받았던 법무부 환경부 두 장관이 입각한 지 한달 이내에 모두 옷을 벗은 것은 그 이유는 제각각이라고 해도 여론과 민의를 거스른 결정(장관인선)이 결국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입증한 것이라 하겠다.

김대통령은 엊그제 “국민은 하늘”이라는 말도 했다. 이 또한 얼마전 ‘마녀사냥식 여론몰이’라는 격한 표현마저 꺼리지 않던 것에 비한다면 크게 달라진 것이다. 그러나 행동이 따르지 않는 말은 정치적 수사(修辭)나 임기응변에 그친다. 물론 김태정(金泰政)전법무부장관의 경우와는 달리 손숙(孫淑)환경부장관을 전격 경질한 것이나 새로 민정수석을 두기로 한 것 등에서 김대통령의 달라진 ‘민의 수용 의지’를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김대통령의 말이 국민적 신뢰를 얻기까지에는 지금보다는 더욱 열린 마음으로 국민에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논리보다는 좀더 겸허한 마음으로 민심을 보듬는 노력이 요구된다.

현정권은 그들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 줄곧 ‘기득권층의 반(反)개혁적 저항’이라거나 ‘야당의 발목잡기’ 또는 언론의 ‘상업적 선동’쯤으로 대응해 왔다. 그러나 최근들어 진보적 성향의 재야인사들과 시민단체들, 심지어 김대통령의 고향이라 할 전남 목포지역의 각계 인사들까지 시국선언을 통해 현정부를 공개 비난하고 나섰다. 개혁을 앞세운 이 정부의 총체적 위기 국면이다.

국민의 자발적 협력을 구하지 못하는 개혁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국민의 자발성은 권력의 도덕성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최근의 잇따른 사건으로 이 정부의 도덕성은 불신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이러던 차에 김대통령이 보인 ‘반성과 민심 수렴’의 인식 전환은 위기 극복의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전망이 밝은 것은 아니다. 안으로는 내각제 문제를 둘러싼 정략적 정파적 갈등이 뇌관처럼 잠복해 있고 밖으로는 대북(對北) 햇볕론이 여전히 위태로운 시험대 위에 올라 있다. 이를 극복하고 진정 민심을 얻는 길은 김대통령부터 모든 욕심을 버리는 평심(平心)으로 돌아가는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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