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하잔 말이냐」▼
며칠전 국회에서 여당의 한 의원은 햇볕정책을 비판하는 야당의원을 향해 “그러면 북한과 전쟁하라는 얘기냐”고 일갈했다.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한 효과적인 어법으로 이런 극단적인 말까지 동원된 것이겠지만, 아무리 김대중(金大中)정권을 싫어하고 햇볕정책에 반대하는 사람이라도 전쟁을 바라는 국민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하나의 민족인 북을 포용하고, 더 많이 주고, 양보할 일이 있으면 넓은 마음으로 양보하면서 북한을 개혁 개방의 마당으로 끌어낸다는 뜻은 옳다. 그래서 남북대화의 길을 열어 이산가족의 한을 풀어주고 통일의 길로 차근차근 나아가는 것은 역사의 순리다.
햇볕정책의 방향이 옳으냐고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도 적지 않지만, 문제는 방향이 옳다고 해서 그것의 털끝 하나라도 건드려서는 안된다는 식의 교조적인 태도다. 이런 정부의 태도로 결국 죄없는 주부관광객이 북측에 억류당하는 불행한 사태가 빚어졌다. 서해에서의 포격전 이틀후인 17일자 동아일보 사설 ‘南北交戰 끝난 게 아니다’는 대략 다음과 같은 요지로 결론을 맺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금강산 관광선을 계속 보내는 것은 국민의 안전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북측으로부터 관광객 신변안전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다고는 하나 교전(交戰)상대인 북측의 말만 믿고 보낼 수 있는가. 상황이 정리될 때까지 대북교류 스케줄을 조정해야 한다. 만의 하나 불의의 사고가 날 경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의견은 동아일보 사설 이외에도 여러 군데에서 나왔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외면했다. 관광선을 며칠 안보낸다고 해서 햇볕정책이 흐려지는 게 아닌데도 말이다. 이런 여론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마치 여론에 밀려 그동안 쌓아온 햇볕정책의 성과에 흠을 내는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그렇다면 그것이야말로 햇볕정책을 망치는 독선적 사고방식이다.
북한은 우리가 도와주고 함께 살아가야 할 ‘동포’이면서 경우에 따라서는 싸워야하는 ‘적’이다. 이런 이중성 때문에 남북관계는 어렵고 복잡하다. 이 때문에 햇볕정책을 수행하는 데에서도 ‘원칙’은 일관성이 있어야겠지만 전술과 전략은 두 측면을 모두 보아가면서 구사하는 탄력성이 있어야 한다. 자식이 귀엽다고 무슨 떼를 쓰더라도 다 받아주고 매일 맛있는 음식만 먹인다고 해서 우등생이 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회초리를 드는 게 효과적일 수 있다. 종아리를 때린다고 해서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뒷북」도 너무 늦어▼
아무리 햇볕정책이라고 해도 국가의 제1과제인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인권을 지켜주는 데 제몫을 못하면 그것은 ‘달빛정책’만도 못하다.
비료를 주고 안주는 것, 차관회담 성사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금강산에 같이 갔던 어린 아들을 홀로 떠나 보내고 북한에 억류된 민영미씨(35)를 보다 빨리 안전하게 데려오는 게 국가과제의 우선순위 1번이 됐어야 한다. 민씨가 별 탈없이 풀려나 다행이지만, 정부를 믿고 햇볕정책을 믿고 금강산 구경하러 간 죄밖에 없는 순박한 주부가 왜 일주일씩 묶여있어야만 했나.
정부는 관광객 신변보장이 확실하지 않으면 금강산관광을 무기한 연기하겠다고 했다. 뒷북을 쳐도 너무 늦게 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왜’생사람이 북에 잡혀 있게 됐는지에 대한 깊은 반성의 소리가 있어야 한다. 아직까지 딱 부러지는 반성의 소리도 책임지겠다는 소리도 없다. 오히려 지금까지의 대북정책이 성공적이라는 자랑만이 계속될 뿐이다. 더욱이 정부주변의 사람들은 서해에서의 무력충돌이나 관광객억류사건도 햇볕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겪어야 할 것들이라고 강변한다.
김대통령이 오랜만에 옳은 소리를 했다.‘국민은 하늘’이라고. 이 정부가 진정 ‘국민의 정부’라면 하늘의 소리를 한참 더 들어야 한다. 아직도 멀었다.
어경택〈논설실장〉euh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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