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가야(예명·33). 작품 하나하나마다 완벽을 추구하는 ‘작가주의’ 만화가다. 이 에피소드의 작품이 그의 데뷔작인 ‘해와 달’. 호평속에 ‘아이큐 점프’에 연재를 끝낸 뒤 그는 1년간 ‘남자이야기’ 구상에 메달려 두문불출했다. 이 두 작품으로 그는 무협만화의 색다른 가능성을 개척하는 작가로 평가받게 됐다.
올 1월부터 ‘영 점프’에 연재되기 시작한 ‘남자이야기’는 무협지와 공상과학물(SF)이 뒤섞인 새로운 장르. 좌백의 무협소설 ‘대도오’를 사이버 스타일로 재해석한 만화다. 지구력 45억5968년. 원인 모를 폭발로 거대한 도시가 멸망한다. 이동수단 통신수단 첨단무기 등이 모두 사라져 버린 미래세계. 이제 다시 무협의 세상이 재현된다.
서울 도봉구 쌍문동에 있는 그의 화실을 찾았을 땐 밤 10시. 창작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그도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을 하고 있었다. 록가수를 연상케하는 긴머리 카락에 험악한 인상이지만 소박함과 고뇌가 깃들인 얼굴이었다.
“‘머나먼 정글’에서 한 소대원의 눈을 빌려 월남전 전체를 이야기하듯, 9명 소대원들의 모습을 통해 미래세계에서 펼쳐지는 남자들의 힘과 감성을 표현하고 싶었지요.”
그는 1년동안 준비했어도 격주간 두달치(4회분) 밖에 그리지 못할 정도로 그림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였다. 특히 첫권에 나오는 도시파괴 장면은 권씨가 수개월을 밤새며 만들어낸 것. 웅장한 스케일의 액션장면, 섬세한 내면 심리묘사, 시적이고 냉소적인 대사, 시공간을 넘나드는 현란한 앵글과 화면분할은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만화평론가 이명석은 “90년대 무협소설의 특징은 ‘칼’로 대변되는 힘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라고 말했다. 권가야의 작품 배경도 영화 ‘매트릭스’나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나우시카’에서 보여지는 디스토피아적인 미래와 맥락이 닿아있다. 폐허의 문명 속에서 주인공들은 싸우면서도 “왜 싸워야하는가. 우리는 누구인가”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는 만화가의 역할을 영화감독에 비유했다. “만화가는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삶과 이야기를 재해석하고 연출하는 사람입니다. 앞으로 7년간 ‘남자이야기’를 감독할 예정입니다.”〈전승훈기자〉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