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경제]換亂 2년, 아시아경제는 아직 「수술중」

  • 입력 1999년 6월 27일 19시 01분


97년 7월2일.

“태국, 고정환율제를 포기. 바트화 가치, 18% 폭락.”

이 짧은 기사가 세계로 긴급 타전되면서 세계경제를 강타하게 된 ‘아시아의 대 환란(換亂)’은 시작됐다. 떠오르던 시장, 아시아를 헤지펀드가 급습해 붕괴시키는 결정적인 순간이기도 했다. 그후로 2년, 아시아 환란을 점검해본다.

▽발단과 전개〓바트화에 대한 핫머니의 공세는 97년 초부터 시작됐다. 방어용 실탄, 달러가 고갈된 태국중앙은행은 7월2일 환율방어를 포기했다.

바트화가 무너지고 보름만에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주변 아시아국가는 속속 변동환율제로 돌아섰다. 환율체계가 흔들리자 이들 국가에 들어와 있던 외국투자자들은 달러를 빼내가기 시작했고 환율은 하루가 다르게 치솟았다. 위기는 10월28일 홍콩증시로 번졌고 11월엔 한국의 원화도 폭락했다. 인도네시아 루피아화의 가치는 환란 전보다 최저 84%나 떨어졌다.

금융부문의 경색은 실물경기도 얼어 붙게 했다.10% 고성장은 마이너스 성장으로 급전직하했고 기업부도가 줄을 이었다. 실업자는 쏟아져 나왔고 파산의 고통에 자살을 택한 기업인도 속출했다. 주식 가치는 절반이하로 떨어졌고 부동산 값은 30∼40% 떨어졌다.

‘하루 1만명씩 실업자가 생기고 100개 기업이 부도를 내며 10명이 생활고로 자살하는 시대.’

벌써 잊어버린 이들이 많지만 당시 한국이 겪었던 IMF위기다. 경제의 위기가 아닌 ‘인간의 위기’란 말이 나올 정도였다.

▽현 상황과 전망〓98년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5개국의 경제는 제2차세계대전 이후 최악인 ―6.9%(5개국 평균)의 후퇴를 기록했다.

물론 지난 2년간 각국은 고통 속에서도 후진적인 각 부문의 개혁을 진행해 왔다. 태국의 58개 투자은행 중 56개가 문을 닫았다. 일본 한국 홍콩 인도네시아 중국 등지의 경쟁력을 상실한 금융기관이 줄줄이 도산했다. 세계경제의 돌연변이같은 한국의 ‘재벌’도 개혁의 도마 위에 올려졌다.

최근 아시아 각국의 상황은 대체로 환율 주가 금리 등 금융부문의 회복세가 뚜렷하다. 구조조정에 따른 신뢰회복, 주요 선진국 금리인하, 외자유입의 활성화, 경기호전에 대한 기대 등 때문이다.

다만 인도네시아 경제는 아직 어렵다. 루피아화 가치는 환란 이전의 35%에도 못미치며 금리는 연 40%대다. 구조개혁이 정치사회적 갈등으로 지체된 까닭이다.

환란을 겪은 아시아지역 국가들의 올해 성장은 인도네시아를 제외하고는 플러스 성장을 기록할 전망이다. 싱가포르는 건실한 경제구조 및 경쟁력으로 98년에도 1.5% 성장했다.

일본 경제기획청은 환란 2주년을 맞아 22일 발표한 백서에서 “아시아경제 회복세는 주로 정부지출의 확대에 힘입은 것으로 아직 본격적인 회복국면이라고 볼 수 없다”고 진단했다. 민간부문 재건과 기업 노동시장 공공부문 등의 구조개혁, 특히 금융개혁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환란이 남긴 것〓환란은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 패러다임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경제 회복이 되더라도 환란 이전의 상태로 다시 돌아가지는 못할 전망이다.

변화의 핵심은 ‘세계화의 확산’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나라의 경제적 사건이 즉시 주변국에 퍼지는 현상이 더욱 뚜렷해졌다. 인적 부문에서는 미국 뉴욕 월가(街) 출신이 각국 금융계를 ‘점령’하다시피했다.

환란은 또한 국가주의에 대한 자본의 승리를 가져왔다. ‘자본’의 요구를 거부한 수하르토 전 인도네시아총리는 하야했다. 환란은 태국 한국 필리핀의 정권교체에도 영향을 미쳤다.

환란은 ‘아시아적 가치’논쟁도 촉발했다. “아시아가 정부주도 성장전략을 택해 시장원리가 무시됐고 정경유착 정실주의 뇌물관행 불투명성 등이 효율성을 해쳤다”는 자업자득(自業自得)론이 지지를 얻었다.

자본의 힘 앞에 무역흑자와 제조업을 중시하던 중상주의적 사고가 무너진 계기가 됐다. 일본의 굴뚝산업은 미국의 금융자본 앞에 항서를 써야 했다. 종신고용 연공서열의 온정주의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아시아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것이다.

〈허승호기자〉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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