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있습니까?
혼자요? 작은 방 하나가 마침 비었는데.
아줌마는 수건과 주전자와 숙박부를 들고 앞장서서 계단을 올라갔고, 나는 얌전하게 그 뒤를 따라 올랐다. 그래, 거기가 학림장 여관 사백일호실이었다. 말이 장급 여관이지 방안은 그야말로 화장실만한 크기였다. 그래도 장급 행세를 한답시고 침대를 들여 놓았는데 거의 방 한 칸을 꽉 채워서 옆으로 겨우 사람 하나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였다. 아줌마가 물컵과 주전자가 얹힌 쟁반을 내려놓고는 숙박부를 내밀었다.
여기 좀 써 줘요. 자세히 써 주시라구요…. 요즘 어찌나 단속이 심한지 몰라요.
나는 안주머니에서 잠수용 주민증을 꺼내어 주민등록 번호며 주소를 보면서 적어 나갔다. 실로 얼마만에 대중 숙박업소에서 묵게 된 건지 까마득하게 오래 전의 일 같았다. 아줌마가 내려간 뒤에 욕실에 들어가 물을 틀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예전과 똑같이 검붉은 녹물이 흘러 나온다. 수도꼭지를 한참 틀어놓고 기다리니까 그제서야 겨우 멀건 커피처럼 변해서 나오는데 물이 제법 뜨거웠다. 차마 벗고 목욕은 못하고 세수를 하고 발만 씻는다. 침대에 누웠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나는 머리맡에 놓인 다이얼이 회전식으로 붙은 검정색 전화기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아마도 지정된 숫자 하나만 돌리면 외부와 연결되는 전자음 소리가 지잉 하고 들릴 것이다. 목소리만이라도 들을 수 있다면.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갈뫼의 집에다 전화를 걸었다. 내가 뭐라고 말했던가. 응, 나야. 지금 여기 서울이야. 집에 들렀었어. 어머니를 만나고 아우도 만났어. 그런데 지금 나는 신림동에 와 있어. 여긴 여관이야. 지금 뭘하니? 그리고나서 또 나는 뭐라고 말했던가. 널 보고 싶어. 네 옆에 있고 싶다.
몇 시 쯤이었을까. 나중에 속으로 따져 보니 한 새벽 세 시쯤 되었을 것이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줌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님, 문 좀 열어요.
예… 왜 그래요?
이번에는 굵직한 사내가 자신있게 문을 탕탕 두들기고 말했다.
임검 나왔슴다아.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주위를 둘러본다. 침대로 꽉 찬 방이며 내 옷이 걸린 옷걸이며 작은 창문 하나가 보였다. 그리고 여기는 사 층이다.
얼른 열어요.
예예… 잠깐 기다리쇼.
나는 잔뜩 졸린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옷을 입었다. 옷을 걸치면서 재빨리 몇 가지 사항을 다시 암기해 보았다. 주소, 성명, 주민등록 번호, 직업, 이곳에 오게 된 목적. 나는 숨을 깊이 들여마시고나서 천천히 내뿜어 보고는 불을 켰다. 그리고 얼른 문을 열었다. 아줌마는 이미 뒷전에 서있고 정복 경찰과 사복경찰이 기다리고 서있었다.
<글: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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