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국가에서 전임 정권의 중대한 실정(失政)은 정권 교체로 이어진다. 따라서 후임 정권은 전임 정권의 실정을 개혁하겠다는 책임을 지고 정권을 잡는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에서는 일만 터지면 ‘전임 정권의 잘못’이나 ‘과거의 관행’을 핑계대고 언론은 책임 소재의 두 측면을 제대로 구분하지 않는다. 문제의 발생 원인이 과거 정권에 있든, 현 정권에 있든 문제 해결의 가장 큰 책임은 분명히 현 정권의 몫이다.
김대중정부를 곤경에 빠뜨린 일련의 사건을 살펴보자. ‘총풍 사건’의 고문 조작 시비, 도청 및 감청 논란, 검찰 항명, 돈 선거, 고관집 도둑, 고급 옷 로비, 검찰의 파업 유도설 등 문제가 터질 때마다 이 정부는 ‘투명하고 철저한 조사’를 다짐했다. 그러나 진실은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고 국민의 불신만 더 깊어졌다.
이 과정에서 ‘기득 세력의 개혁 발목 잡기’ ‘언론의 마녀사냥’ 같은 면책성 핑계도 나왔다. 언론도 이들 문제를 둘러싼 여야 공방을 대체로 양비론으로 보도했지 책임 소재를 추적해 책임의 선후경중(先後輕重)을 가리는 분석에는 대체로 소홀했다.
어떤 학자는 정직성, 협동심, 신뢰, 타인에 대한 의무감은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를 병행 발전시킬 수 있는 ‘사회적 자본’이며 그중에서도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직성, 언행의 일치, 책임감이야말로 이 정부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김대통령의 몸 낮춘 반성과 사과에 대한 평가도 후속 조치가 얼마나 말과 일치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를 추적하는 것도 앞으로 언론의 과제다.
나라의 장래를 위해서도 이 정부의 개혁은 성공해야 한다. 그러나 신뢰가 무너진 사회에서 민주적 개혁이 제대로 진행될 리 없다. 동아일보가 문제의 책임 소재를 가리는 보도에 앞장서 한국 언론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 나아가 한국사회의 신뢰 회복에 이바지해주기를 기대한다.
동아일보는 그런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특히 최근의 견실한 비판 자세가 그렇다.
신문이 보도하는 정보는 크게 시민의 의무 및 권리 행사와 관련된 공공정보, 일상생활(일 가정 레저)을 영위하는 데 유용한 실용 정보, 정서 이완과 활력 재충전을 위한 오락 정보로 구분할 수 있다.
최근 공공 정보와 오락 정보의 비중은 증면과 함께 크게 높아졌지만 실용 정보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실용 정보 가운데서 그나마 레저 정보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높아졌으나 가정생활에 유용한 실용 정보, 특히 일에 관한 실용 정보의 비중은 아주 낮다. 국내외 독자 조사에 따르면 실용 정보에 대한 독자 요구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이런 점에서 동아일보의 ‘미즈 & 미스터’ 내용은 돋보인다. 각종 조사에서 확인되고 있지만 가정생활의 3대 관심사는 자녀교육, 건강, 재테크인데 이들 문제에 관해 유용하고 재미있는 기사를 고르게 출고하고 있다. 학교 교육 문제뿐만 아니라 평생교육문제 그리고 주요 직업군(職業群)의 일과 관련된 실용 정보에까지 보도 영역을 넓히는 것도 도전적 과제가 될 것이다.
이민웅<한양대교수·언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