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새 기구가 萬能아니다

  • 입력 1999년 6월 28일 18시 58분


7월부터 청와대에 ‘삶의 질 향상 기획단’이 발족될 예정이라고 한다. 청와대측이 밝히는대로라면 이 기획단은 생산적 복지대책, 중산층 서민지원대책, 환경친화적 발전정책 등에 관해 범정부 차원의 통합조정기능을 맡는다는 것이다. 복지노동수석 비서관이 기획단장이 되고, 구성원은 정부산하 기관의 연구원 10여명과 각 부처 공무원 수명을 파견받아 운용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무슨 이슈만 대두되면 관성처럼 후속조처라는 명목으로 기구 신설이 운위되는 것은 경계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는 역대 정부에 걸쳐 숱한 기획단과 위원회같은 것이 구성되는 것을 보아 왔지만 도무지 어떤 일을 했고, 무슨 성과를 남겼으며 어떻게 해체되었는지 잘 알지 못한다. 물론 어떤 기구건 출범 당시로서는 세상을 크게 바꾸어 놓을 듯이 현판을 달고, 우수 인력을 끌어모았었다.

행정 메커니즘은 의례 기구 만들고 사람 늘리는 데 치우치기 쉽다. 업무성격이 모호하거나 소관업무의 경계가 불분명한 사안일수록 그런 기구신설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현판만 달아 놓으면 ‘일의 질’에 관계없이 무언가 추진되는 듯한 인상을 심을 수 있다. 공무원들로서는 자리가 늘고 사람 늘리면 해로울 게 없다. 그래서 ‘공무원 숫자는 일이 늘고 줄고 간에 일정비율로 늘어만 간다’는 파킨슨의 가설은 세계 어느나라에서나 ‘법칙’으로 통하는 판이다.

기구신설이 과연 불가피한가 따져보면, 기존 조직에 그 업무를 수행할 기구가 있고 인력이 존재하고 있다. 복지나 중산층대책, 환경친화적 정책에 관해 부처마다 손발이 안맞으면 국무총리 밑의 국무조정실이 ‘조정’하면 될 것이고, 그래도 통합 조정이 안되면 작은 내각이라고 불리는 청와대 비서실에서 관련 수석비서관 중심으로 해결하면 되고도 남을 일들이다.

기구를 늘리는 비용은 크든 작든 모두 국민 부담인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래서 ‘작은 정부’는 환영받는 것이고, 역대 정권마다 출범 초기에는 기구축소와 인력감축부터 시작한다. 이 정부도 초기에 부처를 통폐합하고 군살빼기를 강행하던 초심이 바래가는 것인가. 벌써 청와대에도 복지노동수석과 민정수석 비서관실이 생겨 정권초기 6개이던 수석비서관실이 8개로 늘어났고 국정홍보처같은 정부조직도 부활시켰다.

기구 신설 부활은 어느 정권, 어느 정부를 막론하고 하나의 유혹이다. 그런 유혹을 떨치고 상시적이고 엄격한 ‘체중관리’를 통해 저비용 고효율의 공무원 시스템을 유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기구 신설에 앞서 수행 능률 성과와 코스트를 생각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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