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홍준형/檢警갈등을 푸는 길

  • 입력 1999년 6월 28일 18시 58분


스포츠에서 맞수간의 경기처럼 흥미진진한 것은 없다. 정정당당하게 최선을 다해 승부를 겨루고 지든 이기든 결과에 승복하는 맞수의 모습은 가히 미학의 수준이다. 그러나 또다시 불거진 검찰과 경찰간의 갈등에는 그런 멋진 승부의 미학이 없다. 거기에는 오로지 한풀이와 보복의 졸렬한 기회주의가 지배할 뿐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검경갈등을 다루어 온 정치권의 태도에 있다. 이번에도 결국 대통령이 개입해야만 했다.

최근 경찰이 검찰에 비공식적으로 파견된 경찰인력의 복귀명령을 내린 것을 계기로 검경간 갈등이 재연되는 조짐을 보이자 대통령은 법무부장관과 행정자치부장관을 불러 조기수습을 지시했고 두 장관은 기자회견을 통해 서로간에 불협화음이 없었음을 천명하는 소동을 벌였다. 외견상 사태는 진정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로써 검경간의 해묵은 갈등과 반목이 근본적으로 해소되었다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통령까지 나서 서둘러 환부를 봉합하였으나 이제까지 그랬듯이 그 환부는 언제라도 다시 터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대통령의 중재로 봉합된 갈등이 재연될 경우 대통령의 리더십이 손상을 입는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검경갈등의 처리과정을 보면서 도대체 우리 나라에 정책갈등을 최종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합리적인 기준과 절차가 있는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검경갈등의 근본원인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경찰의 수사권 독립’ 또는 검찰의 문법에 따르자면 ‘검찰의 수사지휘권으로부터의 독립’ 문제가 그것이다. 이를 둘러싼 이견과 불만이 존재하는 한 갈등은 언제라도 다시 표면화될 수 있다. 경찰에 독자적인 수사권을 줄 것인가, 준다면 어떤 범위 안에서 줄 것인가 하는 것은 중대한 국가정책의 문제이다. 이 문제에 대한 논란은 국민의 정부가 자치경찰제 도입을 공약한 데서 비롯된 측면도 없지 않지만 벌써 오래전부터 잠복하고 있었다. 역대 어느 정부도 이를 감히 공론화하지 않았기에 이 문제는 국면에 따라 간헐적으로 표면화되었고, 합리적인 토론과 의견수렴보다는 양대 권력기관의 볼썽사나운 힘겨루기 양상을 띠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이 두 기관간의 어쭙잖은 근육자랑을 보는 국민의 마음은 언제나 편치 않았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검경간의 갈등이 그동안 안으로 곪아가고 있었다는 데 있었다.

이들 권력기관간의 갈등이 표면화될 때마다 대통령이 나서야 할 정도라면 이는 우리 나라가 그 갈등의 원인이 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 아닌가.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정부는 이 문제를 개혁과제의 하나로 공론화시켜 그 정책결정의 일정을 밝히고 합리적인 기준과 논의절차를 마련하여 이를 통해 사회적 합의에 입각한 정책결정을 내려야 한다. 물론 문제의 본질상 성급한 결정은 금물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급히 주무장관들을 불러 휴전을 명하거나 다시 이들로 하여금 당사자들에게 함구령을 내리도록 하는 미봉책만으로는 안된다. 국민의 인권보장을 손상시키지 않는 한도 내에서 무엇이 국민에게 득이 되느냐 하는 견지에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여야 한다.

검찰은 인권침해의 폐해가 우려된다고 강조하고 있고 경찰은 반대로 국민의 편익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찰의 주장이나 검찰의 반박 모두 일리가 없지 않다. 그러나 과연 누구의 말이 맞는가. 국민은 궁금하다. 객관적이고 신빙성 있는 근거를 바탕으로 국민 대다수가 수긍할 수 있는 합리적 정책결정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인가. 최근 연기된 자치경찰제의 도입과 관련해 1,2년 동안 대상지역을 한정하여 경찰에게 제한된 범위의 수사권을 부여하고 그 시행 결과를 토대로 최종적 결정을 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만하다. 이제 우리도 학습능력과 합리적인 정책결정 능력을 갖춘 정부를 가질 때가 되지 않았는가. 정부가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를 주선하고 이를 통해 해묵은 숙제를 하나 둘 사려깊게 해결해 나갈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 아니겠는가.

홍준형(서울대교수·공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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