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최규철/「임기중 욕심」

  • 입력 1999년 6월 29일 19시 30분


60년대 후반 미국사회는 월남전참전을 놓고 국론이 첨예하게 갈리면서 엄청난 소용돌이에 빠졌다. ‘대사회전쟁’(Great Society War)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요즘 한국사회도 햇볕정책을 놓고 논란이 한창이다.

서해의 남북교전으로 인한 불안감이 채 가시기도 전에 금강산 주부관광객의 억류에 이어 베이징남북차관급회담이 맥없이 끝나고 말자 그동안의 비판이 더욱 증폭, 확산되는 추세다. 햇볕정책이 뭐기에 잇달아 수모를 당해야 하느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졌고 이들의 마음은 몹시 착잡하다. 아니 그것은 분노다. 북측에 대해서 만이 아니라 정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야당시절부터 남북문제에 관해 나름대로 확고한 지론을 정리해 왔다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자신있게 내세운 햇볕정책 아닌가. 더욱이 당장 대체할 만한 뚜렷한 다른 정책도 없지 않은가. 김대통령이 취임이후 미국과 일본은 물론 중국 러시아, 그리고 최근의 몽골까지 외국방문 때마다, 또 수시로 각국 정상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의 지지가 있었다는 햇볕정책이다. 그런데 막상 집안에서는 정신없이 시달리는 형국이다. 그래서인지 최근 방한하는 외국인사들은 빠짐없이 심각한 표정으로 햇볕정책의 앞날에 관해 묻는다.

그렇다면 햇볕정책에 자주 ‘그늘’이 드는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정책, 특히 대외정책은 지도자들의 신념을 기조로 한 내용에 주변의 비판이 소화되면서 형성돼 나가는 것이 정도(正道)다. 그런데 햇볕정책의 경우 그동안 주변의 비판에 너무 냉담했다. 이는 대통령의 확신이 그만큼 강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정부안에서는 어느 누구도 감히 ‘수정론’을 꺼내기가 껄끄러운 분위기라는 이야기다. 3단계 통일론을 비롯해 남북문제에 대한 김대통령의 관심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여론의 정책적 비판을 외면해도 되는 이유는 아니다. 햇볕정책이 비판의 대상이 된 것도 여론의 지지가 충분치 못했기 때문이다. 정책추진때 여론의 지지만큼 든든한 것이 또 있겠는가. 대외적으로 중요한 무기가 되는 것도 바로 여론 아니겠는가. 그런데 정책추진자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비판을 전면부정하는 공격으로 해석할 일은 아니다. ‘내가 제일 잘 안다. 웬 훈수냐’고 한다면 그것은 권위주의적 발상이다.

지난해 6월 동해안 잠수정사건 이후 햇볕정책 앞에 비로소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란 말이 전제됐고, 꼭 1년뒤인 22일에야 “북에 대해 일방적으로 주는 일은 없을 것”이란 김대통령의 울산발언이 있었다. 두번 모두 세찬 비판이 일고 난 한참 후의 일이다. 경직된 모습을 보이는 이유다.

햇볕정책이 안고 있는 또 다른 취약점은 ‘시간’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햇볕정책은 ‘시간싸움’을 벌이는 인상을 준다. 그래서 자주 지적되는 것이 “왜 서두르느냐”다. 상대방이 있는 판에 시간까지 상대하자니 얼마나 힘든 싸움이 되겠는가. 대외정책을 단계마다 클라이맥스로 매듭지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그래서 가급적 빨리 화려한 업적을 주위에 과시하려는 것은 아닌지. ‘정책은 끝이 없는, 계속되는 과정’이라는 말도 있다. 정치가들은 클라이맥스를 추구하지만 남북관계에선 그런 희망이 신기루가 되는 경우가 많다. 역대 정권마다 빠지지 않고 되풀이해온 말이 바로 ‘남북정상회담추진’아닌가.

임기중에 뭔가를 이룩해 놓겠다는 욕심때문인지 최고사령관이 왕왕 대북(對北)최일선에 나서는 경우도 있다. 위험천만한 일이며 내부적으로 일처리만 꼬이게 할 뿐이다. 더욱이 상대는 예측하기 어려운 북한아닌가. 이제 무엇보다‘시간싸움’에서 벗어나는 일이 시급하다. 71년 빌리 브란트 서독총리가 제창한 동방정책(OSTPOLITIK)은 18년이 지난 89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면서 비로소 그 결실을 보았다. 국제적 환경과 대내외 여건을 감안할 때 오히려 우리가 시간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임기중 욕심’을 버리는 만큼 햇볕정책은 유연해질 수 있고, 논란도 줄일 수 있다. 최근 얽히고설킨 갖가지 정치현안을 보면 ‘임기중 욕심버리기’는 햇볕정책에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최규철<심의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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