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 민들레도 노랑 저고리
첫돌맞이 울 아가도 노랑 저고리
민들레야 방실방실 웃어 보아라.
아가야 방실방실 웃어 보아라.
강소천 선생의 동화중에 ‘꽃신’이라는 작품이 있다. 전쟁터에 나간 남편에게 첫 아기를 낳은 아내가 편지를 쓴다. 당신이 아빠가 되었노라고. ‘군우’가 잘 연결되지 않다가, 아기의 첫돌무렵 꽃신 한켤레가 소포로 온다. 어느날 바둑이와 함께 집앞 잔디밭에서 놀던 아기가 꽃신 한짝만을 머리에 이고 들어온다. 한짝을 어쨌느냐, 아무리 물어도 아기는 아직 말을 못한다. 이튿날 아빠에게서 편지가 온다. 사보낸 꽃신을 신고 아장아장 걷는 아기를 보고 싶다고. 엄마는 한짝 남은 신발로 아기의 엉덩이를 때리고, 그날 밤부터 고열에 시달리던 아기는 죽고 만다. 꿈에 오는 아기는 꽃신 한짝만 신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바둑이가 어디에선가 꽃신 한짝을 물고 들어온다….
읽은지 오래됐지만 이처럼 기억하는 것은 전쟁과 궁핍의 그 지난했던 시절, 하룻밤 사이에 여동생 둘을 잃은 사람이기 때문이리라.
장마철이었고, 여섯살과 네살배기는 청변과 혼절을 반복했다. 신새벽, 눈이 뜨였을 때 마루에는 털보아저씨와 아버지가 앉아 계셨다. 부엌문에 괭이와 삽이 세워진 채, 연장날에 묻어 있던 황토흙이 빗물에 씻겨 내리고 있었다. 비질하듯 퍼붓는 빗물이 고이다 못해 안마당 가득히 벙벙하게 차오르고, 어쩌다보니 검정고무신 한짝이 쪽배같이 떠돌고 있었다. 한순간 부엌문이 열리며 뛰쳐나온 어머니가 고무신을 건져올려 무명적삼 가슴에 안으셨다. 이걸 어디다 묻노! 아버지는 끝내 어머니에게 동생의 무덤을 가르쳐주지 않으셨다. 팔십 고령의 어머니는 지금 그때 그 검정고무신 한짝을 어디다 묻어안고 계실까….
이제 그때같이 우리는 가난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전쟁마당도 아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라는 걸 겪었다지만 삼십도를 오르내리는 한낮 전동차를 타면 때로는 반소매 셔츠 밑으로 으스스 소름이 돋는다. 창밖을 내다보면 짙푸른 녹음, 빌딩 숲, 오가는 자동차, 그래서 우리나라 좋은 나라! 그러나 너무나 허술하고 또 허술하다.
아이들 앞에 얼굴을 들 수가 없다. 할 말이 없다. 이럴 때는 입을 다무는 것이 상책이다. 더구나 고통받는 이 앞에서는 가장 조심할 것이 세치 혀다. 그것을 가볍게 놀려 뭐라든가 위로의 말을 꺼내면 오히려 그 말이 불화살이 되어 더 큰 고통을 안겨줄 뿐이다.
그렇지만 분통이 터진다. 사고가 날 때마다 들리는 소리, 시설미비, 안전불감증, 누가 허가했어? 스티로폼 지붕, 자체 경보기 먹통, 소화기 작동불가, 어른들 책임, 원인규명, 보상문제 협의…. 이젠 듣기도 보기도 싫다. 다가오는 방학기간 중엔 어디서 또 날벼락이 떨어져 무슨 비보로 날아올 것인가.
산이 저문다/노을이 잠긴다/저녁 밥상에 애기가 없다/애기 앉던 방석에 한 쌍의 은수저/은수저 끝에 눈물이 고인다//한 밤중에 바람이 분다/바람 속에서 애기가 웃는다/애기는 방 속을 들여다 본다/돌창을 열었다 다시 닫는다//먼 들길을 애기가 간다/맨발 벗은 애기가 울면서 간다/불러도 대답이 없다/그림자마저 아른거린다(김광균 지음 ‘은수저’전문, 46년 7월‘문학’수록).
강정규<동화작가·「시와 동화」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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