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을 안달복달하다가 나는 동생에게 편지를 쓰기로 결심하구 말았습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내가 아가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고는 더 이상 고독해서 못견딜 지경이 되었겠지요. 그리고 당신에 관한 기억도 차츰 나의 내면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남기고는 점점 사라져가는 것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정희에게서는 물론 아무런 응답이 오질 않았어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나는 갈뫼의 주소를 내가 아는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았거든요. 내가 가끔씩 엄마나 정희에게 학교에서 전화를 할 적에도 그냥 건강하게 잘 있다는 식으로 안부를 전했구요, 개인전 준비하느라고 서울엔 당분간 못간다고만 했으니까요. 정희는 제 나름대로 애가 탔다구 그래요. 불쑥, 어떤 남자의 아내가 되겠다는 얘기와 어머니가 되어버린 여자의 변화에 대해서만 써서 편지를 보냈으니 그때 벌써 본과 이학년이던 정희는 눈치를 챘을 거예요.
이 너른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려고 동생에게 그런 아리송하고 엄청난 편지를 보내고나서 나는 금방 후회했어요. 그래서 첫번째 편지에 이어서 곧 주소도 알리고 더 정확하게 모든 일을 밝히는 편지를 쓰겠다며 벼르다가 방학이 끝나고 개학해서 사직서를 내던 날 학교에 나가서야 정희가 내게 보낸 답장을 볼 수가 있었죠.
윤희 언니
그런 식으로 편지를 해서 사람을 놀라게 하면 어떡해. 언니는 옛날부터 그런 식이었어. 예술가라고 너무 그러지 말아요. 비약이 심하잖아. 앞 뒤 모두 자르고 아무도 몰래 결혼을 했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그것두 요즈음 일이 아니라 작년이었다면서?
사실은 집에서두 조금 걱정은 하구 있었어. 엄마는 점포를 둘씩이나 사서 늘리셨어. 그러니 일에 바쁘시구 나두 공부하랴 청춘사업두 하랴 언니 생각을 아주 쬐끔밖에는 할 수 없었던 걸 부인하지는 않겠어. 그렇지만 지난 몇 달 동안 통 연락이 없고 학교에 전화해 보면 휴직 중이라구만 그러지, 숙소에 전화라든가 무슨 연락이 안되냐니까 다들 모른다구 하더라. 아무리 어른이 되었다지만 언닌 우리 집 맏딸 아니야? 드디어 그렇게 바쁘고 호걸이신 우리 엄마도 언니네 학교가 개학하구나서도 연락이 안되면 나 보구 한번 내려가 보라구 하시는 거야. 이 편지를 받는 즉시 나에게 자수해 주기 바래.
걱정은 좀 되지만 나는 언니의 판단을 언제나 믿어. 아버지가 늘 그러셨어. 뭐…옛날식 생각이겠지만, 언니가 차라리 아들이었으면 참 좋았겠다구 그러셨잖아. 승환이가 그때는 아직 어렸으니까 아쉬워서 그러셨기도 했겠지만 엄마두 그랬다. 느이 언니는 속이 깊구 참을성이 많다구. 아버지 아프실 때에도 내가 곁에 있을젠 별로 시키시는 일이 없었어. 그리고는 느이 언니 언제나 온대냐, 하구 몇번이나 물으시는 거야.
<글: 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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