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육정수/惡政과 반성

  • 입력 1999년 7월 4일 18시 37분


다른 분야는 발전을 하는데 정치는 늘 그 모양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18세기말 미국의 제2대 대통령 존 애덤스는 “정치는 지금도 3000∼4000년 전과 차이가 없다”고 탄식한 바 있다. 17세기 스웨덴 정치가로서 여왕을 대신해 섭정까지 했던 악셀 옥센셰르나 백작의 유언도 정치인들에겐 뼈아프다. “내 아들아, 이 세상을 얼마나 하찮은 자들이 다스리는지 똑똑히 알아두거라.”

▽정치인의 자질문제는 고대(古代)이래 인류의 고민거리다. 플라톤은 특정계급을 통치전문가로 훈련시켜야 한다는 제안을 했다. 나라를 올바로 이끌어갈 현명한 사람은 보통사람들 중엔 거의 없기때문에 우생학적으로 그런 인종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이른바 철인(哲人)이라는 개념이다. 플라톤의 제안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현실성이 없음은 물론이다. 당시 정치가 오죽 답답했으면 그런 생각을 해냈을까.

▽퓰리처상 수상작가인 바버라 터크먼은 악정(惡政)을 네가지로 분류했다. 첫째 폭정(暴政) 또는 압정(壓政), 둘째 지나친 야심, 셋째 무능 또는 타락, 넷째 독선 또는 아집. 그중에서도 독선은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 현상이며 정치구조와도 관계가 없다고 그는 지적했다. 군주정치와 과두정치뿐만 아니라 민주정치도 독선을 낳는다는 것이다. 과연 그의 분석이 맞다는 것을 근래의 우리 정치를 보면 실감할 수 있다.

▽그동안 독선적이었다는 비판을 받은 김대중대통령이 민심이반을 초래한 일련의 사태에 대해 ‘국민은 하늘’이라며 사과한 이후 정치권에선 뒤늦은 ‘반성’의 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그동안 그들은 어디에 있었는가. 반성도 때가 있는 법이다. 남이 하니까 뒤늦게 따라하는 반성은 왠지 진실성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반성은 안하는 것보다는 하는 게 나을 테니까 앞으로 반성의 효과가 얼마나 나타날지 지켜볼 일이다.

육정수<논설위원>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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