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이 국력인 미래 지식기반사회에 대비하기에는 한국 대학의 경쟁력에 문제가 있음은 오랫동안 지적돼 왔다. 이의 해결을 위해 정부가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것은 대학인들의 일관된 주장이었기에 이번 논란은 사업의 타당성보다는 방법론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BK21 사업계획 중에서 가장 쟁점이 되는 부분은 분야별 선발에 의한 우수집단의 집중지원, 이에 따른 대학별 부익부 빈익빈 현상 심화의 우려, 학문별 지원의 불균형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지원방식을 보면 한정된 재원을 고려할 때 우수집단에 대한 집중지원은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보인다.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연구중심대학은 워낙 많은 재원과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해 미국과 같이 고등교육이 발달한 나라에서도 소위 연구중심대학으로 분류되는 대학은 전체 4년제 대학의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또한 우수집단 선정을 대학 전체가 아니라 학문분야별로 하는 것도 옳은 방향이라고 보인다.
한국 대학의 최대 병폐는 천편일률적인 종합대학 체제로 학부생의 입학성적으로 서열이 정해지는 것인데 분야별 우수 대학원 선정은 이를 해소하기 위한 대학별 특성화에 기여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집중지원의 결과가 이미 상당한 혜택을 받고 있는 몇몇 선두주자의 기득권을 강화하는 방향이 되어서는 안된다. 현재 한국 대학 연구의 활성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경쟁풍토의 부족이다. 이 사업으로 대학별 순위가 고착화되는 등 경쟁여건이 더욱 악화되면 세계적 수준의 연구는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히려 선두그룹간에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더 나아가 대학별 특성화를 통해 저변그룹이 선두그룹으로 부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도록 정책을 펴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면에서 볼 때 현재 알려진 BK21 계획에는 문제점이 있다. 소위 ‘선도그룹’과 ‘저변그룹’이 받는 지원의 격차가 너무 크고 한번 선정이 끝나면 그룹간의 이동 또한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저변그룹’의 지원을 강화하고, 일정 기간 후 평가에 따라 ‘선도그룹’을 재선정하는 보완 장치가 필요하다.
일부에서 우려하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에 의한 중소규모 대학의 연구 활동 위축 위험성에 대해서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사실 대학연구 지원예산이 연 1000억원에서 3000억원 규모로 대폭 늘어나는 상황에서 집중지원대상이 아닌 대학이더라도 현재보다 정부지원금의 절대액이 줄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집중지원을 받는 대학이 그 지원을 무기로 대학원생을 증원하는 등 양적 팽창을 시도하면 가뜩이나 취약한 중소규모 대학의 연구기반은 무너질 위험성이 크다. 이것은 연구의 질적 향상을 목표로 한 BK21의 목표에도 어긋나고, 결과적으로 한국 대학의 연구 여건을 황폐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것을 막기 위해 교육부가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지금도 교수 대 대학원생 비율이 지극히 열악한, 소위 ‘선도대학’들이 과거의 습성대로 양적 팽창만 도모하면 가차없이 퇴출시켜야 한다.
학문분야간 재정지원의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한국의 형편상 한정된 재원을 시급히 필요한 응용기술 분야에 중점투자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현재의 프로그램은 정도가 지나쳐 장기적인 분야간 인력수급에 문제를 일으킬 위험성마저 있다. 특히 다양화를 특성으로 하는 미래 사회에서 가장 쓸모 있는 인재는 탄탄한 기초지식을 바탕으로 상황에 따라 변신이 가능한 사람임을 잊어서는 안된다.BK21 사업은 정부가 고급인력 양성을 위해 내놓은 최초의 포괄적인 계획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계획이 여러 논란에 휘말려 표류하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원안 강행’이나 ‘전면 백지화’의 극단적인 주장보다 합리적인 포용이 바람직하다.
오세정<서울대교수·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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