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불편해요]이름뿐인 지하철 노약자석

  • 입력 1999년 7월 5일 19시 48분


『써놓기만 ‘노약자석’이지 실제는 항상 젊은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어요.』(최형인씨·72)

『젊은 사람들한테 노약자석을 빼앗긴 노인분들이 일반 좌석으로 올지 몰라 자리에 앉아 있으면 마음이 편치 못해요.』(최모씨·대학생)

5일 오전 9시경 서울 지하철 2호선 전동차내. 10량짜리인 이 전동차에 마련된 노약자석은 112석에 달했지만 노약자석에 실제 앉아있는 사람 중 60대 이상의 노인은 서너명에 불과했다.

일반 좌석에 앉아 있는 노인이 20여명 됐으며 일부 노인들은 문 앞이나 일반 좌석 앞에 서 있었다.

출입문 앞에 서 있던 이종일씨(69)는 “노약자석 쪽으로 가면 자리를 양보해달라고 은연중 압력을 넣는 것처럼 비칠까봐 가급적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노약자석에 앉아 있던 이모씨(33)는 “내가 탈 땐 전동차 안에 노약자가 없었고 자리가 비어 있어 그냥 앉았다”며 “노약자가 타면 비켜주려고 했는 데 깜빡 잠이들고 말았다”고 말했다.

요즘 지하철의 노약자석은 이렇듯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상태다.

그러다보니 서서가야 하는 노인은 물론이고 젊은 사람들도 일반 좌석에 앉아 있기가 불편하다.

“얼마전 일반 좌석에 앉아 졸고 있는데 ‘요즘 젊은 애들은 노인만 타면 자는 척 한다’고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눈을 떠보니 바로 앞에 노인 두분이 서 있더군요. 그 뒤부턴 언제 노인이 앞에 올지 몰라 졸려도 꾹 참습니다.”(대학생 박정인씨·22·여)

서울지하철공사는 97년 청원경찰과 직원들을 동원해 노약자석에 젊은 사람이 앉지 못하도록 단속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승객들의 반발이 적지 않아 결국 단속이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지하철공사 김흥갑(金興甲)운수부장은 “실제 전동차 1편당 112개의 노약자석이 마련돼 있어 노인과 장애인의 탑승률을 감안할 때 노약자석 지정탑승제가 잘만 지켜져도 노인들은 대부분 앉아 갈 수 있다”고 말했다.

회사원 김재원씨(33)는 “노약자석에는 젊은 사람들이 앉지 못하게 제도적으로 강제해 이를 어기는 사람에겐 과태료를 부과함으로써 젊은 사람들이 일반 좌석에 편안히 앉아갈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정보기자〉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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