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에서는 주제나 안건이 분명하게 설정되고 말하는 사람의 관점이 뚜렷하게 서야 한다. 내용도 논리적 일관성을 갖추어야 설득력이 크다. 한국의 토론 문화에서는 이같은 과정이 부드럽게 이어지지 않을 때가 많다.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논의의 대상이 분명하지 않을 때이다. 최근 많이 쓰는 ‘개혁’이나 ‘구조조정’을 예로 들어보자. 개혁은 얼마나 거창한 용어인가. 한편 얼마나 사용하기 쉬운 용어인가. 여기에 함정이 있다. 누구나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를 극복하고 한국 경제를 선진화시키기 위해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국민적 합의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꺼풀만 벗겨보자. 어느 부문을 개혁해야 되는가. 그 내용은 어떤 것인가. 이를 구체적으로 만들어야만 토론이 시작될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토론은 총론 수준을 넘지 못하게 되고 대화는 말의 성찬으로 끝날 수 있다.
한국의 토론 문화를 시사하는 교통사고 이야기가 있다. 자동차가 부딪쳤을 때 처음부터 사고가 왜 났는지, 그리고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를 따지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화부터 내기 때문에. 그리고 조금 뒤에는 시비로 이어진다. 왜 반말하느냐고 삿대질을 시작해 놓으면 쟁점 해결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서로 좋지 않은 감정만 쌓이게 된다.
토론을 통해 나온 대책이나 결론 부분이 너무 공허할 때도 많다. 내용은 현란하지만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구체적이거나 실천적이지 못한 것이다.
토론이 과제보다는 사람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 결과 이성보다 감정이 앞설 수 있다. 발표자나 토론자 모두 쟁점이 되는 사안을 중심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토론의 범위를 칼날같게 지켜야 한다.
그리고 발표되는 내용은 발표자의 인격과 별개다. 그런데도 인신을 공격하거나 비판을 인격과 동일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한국 사회는 여러가지 연(緣)으로 움직인다. 지역이나 학교는 특히 강한 끈이다. 집단을 대표하는 이기주의도 만만치 않다. 특정 집단이나 지역의 뜻을 대표하더라도 발표한 내용의 범위내에서 논리나 근거에 기초해 주장을 펴야 한다. 이때 누구든지 나이 학력 지역 등에 관계없이 자기의 의견을 당당하게 피력할 수 있어야 한다.
토론은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면서 공정한 틀 위에서 진행돼야 한다. 누구나 명확하게 문제나 용어를 선정하고 논리적인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구체적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절차나 과정이 공정해야 한다.
이규황(삼성경제연구소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