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8개월 전 우리는 국가 부도위기라는 6·25전쟁 이후 최대 국난에 직면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철수하고 환율은 절상돼 채무지불정지(모라토리엄) 선언 일보 직전까지 이르렀다. 많은 기업과 금융기관의 파산이라는 초유의 일들이 현실화되면서 실업자가 늘고 국민은 절망의 시름에서 허덕이게 됐다.
▼암울했던 시대 마감 ▼
주식시장의 분위기도 싸늘하게 식어 주가지수는 300 수준까지 하락했다.
그러나 지도자와 전 국민의 피나는 노력의 결과 수치상 경제회복은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다. 환율은 안정되고 30%까지 치솟았던 금리 수준도 낮아져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한 자리 금리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1년 전 마이너스를 기록했던 경제 성장률도 5∼6%의 성장률을 구가하리란 전망이다. 이러한 결과를 반영해 기업의 수지는 개선되고 종합주가지수도 1000을 회복하게 됐기 때문에 이번 1000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할 것이다.
경제위기를 탈출해 암울했던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2000년대를 여는 값진 의미를 갖는다.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키는 우리 민족의 저력을 보였다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과거 몇 차례 지수 1000 경험은 모순된 경제구조하에서 이루어져 오래가지 못했지만, 이번 경험은 온전하지는 않지만 구조개혁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달성됐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지속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
주가지수는 한나라 정권의 성과지수일 수도 있다는 의미에서 보면 국민의 정부의 경제 정책은 일부 비판적 시각도 있지만 주식시장에서는 일단 합격점을 받았다고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 제일 위험한 것은 현실의 성과에 지나치게 도취돼 자만에 빠지는 것이다.
오늘의 경제상황이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의 원인이 근본적으로 치유된 결과라고 보기에는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 경제 주체들의 철저한 자기 개혁없이는 또 다시 위기에 빠질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도 사실이다. 어떻게 하면 현재의 경제 회복 속도와 주가 상승 분위기를 계속 이어갈 것인가에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97년을 전후해 경제위기를 겪었던 대부분의 나라들이 높은 경제성장률과 주가 상승을 경험하고 있다. 결코 우리만이 잘해서 오늘의 경제성과가 나타났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자화자찬이라는 일부의 지적에 겸허하게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개혁의지 약화 안될 말 ▼
IMF체제를 재수하지 않은 나라가 거의 없었다는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볼 때 지나치게 이완된 지금 분위기로서는 ‘한국만이 재수하지 않았다’는 기록을 남기기가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정치권의 환골탈태가 없이 경제의 선진화는 요원하고, 기업의 투명경영을 바탕으로 한 철저한 구조개혁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또다른 경제위기에 이은 증권시장의 붕괴도 충분히 예상된다. 경기 회복세가 뚜렷해지니까 기업들의 구조개혁의 의지가 많이 약화된 듯하다. 노동자들의 요구사항과 국민의 씀씀이가 달라지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러한 변화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특히 걱정이 되는 것은 IMF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우리는 거의 모든 부문에서 개방 폭이 크게 확대됐다는 점이다. 한국 자본시장에서 외국인 투자 비중은 전체 시가총액의 25%에 이르고 있다. 각 부문에서 시장을 안정화시킬 정책적 수단이 거의 없어 다시금 위기를 겪는다면 극복하기가 훨씬 어려울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주주가 주인으로서 정당한 대우를 받고 경영내용이 투명하게 공개되는 기업, 핵심 역량을 발휘해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강한 기업이 많이 나와야 한다. 단순한 소비에 의해서가 아니고 투자와 수출이 뒷받침된 경제 성장이 이루어져야 한다. 적정 부채비율을 유지하고 기업의 이해 관계자들이 기업의 체질 강화를 위해 상호 협조를 잘할 때 우리의 주가는 견조한 상승세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최운열<한국증권연구원장·서강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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