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임연철/20세기 금강산

  • 입력 1999년 7월 7일 19시 19분


신문사 입사시험 중 작문 채점을 하다보면 천편일률적 내용에 금세 식상하게 된다. 가령 ‘컴퓨터’를 제목으로 주면 ‘비싼 컴퓨터를 어렵게 장만했고 처음에 배우느라 고생했다’는 유의 줄거리를 쓴 글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컴퓨터가 가져온 20세기 문명 패러다임의 변화라든가 인터넷의 발전에 따른 인간소외의 문제 등 뭔가 다른 창의성 있는 내용의 작문을 찾기가 쉽지 않다.

▽대학을 졸업한 응시자들의 작문에서 창의성을 찾기가 힘들게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암기와 객관식위주의 중등교육 탓이라는 생각이 든다. 2002년부터 입시제도를 개혁해 무시험으로 대학 신입생을 선발하려는 정책도 고등학생들이 좀더 창의적인 마인드를 갖게 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이해된다. 그러나 말이 쉽지 학교환경은 그대로인 채 갑자기 학생들에게 창의성을 갖게 하기란 쉬운 노릇이 아니다.

▽7일부터 서울 광화문 일민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몽유금강(夢遊金剛)―그림으로 보는 금강산 300년전’을 보면 같은 금강산을 보고도 화가들이 펼쳐낸 각각의 창의성에 감탄하게 된다.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로 찾아낸 조선시대 화가들의 작품에서도 창의성은 구석구석 느껴지지만 4월 금강산을 스케치하고 돌아온 15인 화가의 작품을 보노라면 자연을 보는 예술인의 눈이 얼마나 다양한가를 알 수 있다.

▽구룡폭포를 그린 한 작품은 황색 위에 붓으로 아홉개의 줄을 긋고 한가운데를 종단해 폭포가 흐름을 형상화 해놓은 모습이다. 같은 구룡폭포를 색구슬로 표현한 작품이 있는가 하면 커다란 물통바닥에 초록과 연두색의 구슬을 깔아 옥류동 계곡의 에메랄드빛 물을 재현하려 한 작품에서도 번뜩이는 창의성을 만나게 된다. 창의성의 세기가 될 21세기를 앞두고 열리는‘몽유금강전’은 청소년들의 창의성을 자극할 게 틀림없어 보인다.

〈임연철 논설위원〉ynch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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