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부가 이 주식을 사기 위해 선금으로 지급한 400만 파운드의 돈은 런던의 로스차일드 은행에서 나온 것이었다.
수에즈운하를 둘러싼 거래만큼 우아하고 신속하고 대담한 것은 없었다. 이 거래에서 로스차일드 가는 잠깐이나마 여왕 전하의 정부와 동등한, 아니 어쩌면 그보다 약간 위에 있는 하나의 주권 국가 같은 지위를 누렸다.
그보다 20년전, 영국은 지중해와 홍해를 잇는 운하를 건설하자는 제안에 대해 이상할 정도로 근시안적인 태도를 취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막강한 해운국이었던 영국에 있어서 프랑스 자본과 기술자들에게 운하의 건설을 넘겨버린 것은 심각한 계산착오였다. 1869년에 이 운하가 개통될 즈음 대영제국의 지도는 이미 바뀌어 있었다. 런던에서 제국의 보석인 인도에 이르는 1만7300㎞의 뱃길이 1만138㎞로 줄어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6년후 파라오가 된 것처럼 사치를 즐기던 이집트 총독 이스마일 파샤가 엄청난 빚 때문에 수에즈운하 회사의 주식을 팔아야만 하는 지경이 됨으로써 영국에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이 역사적인 기회에 디즈텔리 총리가 관심을 갖도록 만든 것은 아마도 영국 은행의 수장이었던 라이오넬 드 로스차일드였을 가능성이 크다. 디즈텔리는 철저하게 비밀을 지키면서 신속하게 행동해야 했으므로 개인 비서를 라이오넬에게 보내 엄청난 선금을 내줄 수 있는지 의향을 타진해보았다. 전설에 의하면 과묵하고 용의주도한 로스차일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무엇을 담보로 하겠습니까?”
“영국 정부입니다.” 비서가 대답했다.
그리고 로스차일드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는 것만으로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교차로 중의 하나를 영국 정부가 확보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로스차일드는 선금을 빌려준 대가로 논란을 불러일으킬만큼 엄청난 수수료를 받아냈다. 선금의 2.5%와 연간 수입의 5%가 수수료로 지불되었던 것이다.
이 거래는 이집트의 당시 나세르대통령이 1956년 7월 수에즈운하 회사를 국유화할 때까지 81년 동안이나 효력을 발휘했다.
▽필자:론 체르노〓록펠러의 전기인 ‘타이탄’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