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보니 일석이조(一石二鳥) 천고마비(天高馬肥) 정도면 많은 사람이 한자로 쓸 수는 없더라도 그 뜻을 머리에 떠올리나, 유유상종(類類相從) 격세지감(隔世之感)은 그리 못하는 것 같다. 하기는 일본인도 애매모호(曖昧模糊) 와신상담(臥薪嘗膽) 정도면 마찬가지로 힘들다.
‘한국어에는 한자 어원이 많기 때문에 한글만으로는 문자 및 언어생활이 제대로 안될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일본사람들이 있다. 나는 견해를 달리 한다. 한글만으로도 충분히 말이 된다. 사실 일본인도 건강(健康) 현상(現象) 정부(政府)같은 낱말은 한자의 개념에 의존하지 않고 주로 음으로 파악한다. 한국어는 한자를 한글로 쓰더라도 글자수는 똑같다. 일본어는 히라가나로 한자를 표기하면 글자수가 많아진다. 한자 없는 일본어는 일본인도 이해하기 어렵다.
일본과 한국은 한자와 고유어 영어를 섞어서 말을 만든다. 급커브 명콤비 롱다리 휴대폰 등이다. 매우 편리한 조어(造語)다.
일본은 한눈에 순간적으로 의미 개념을 알 수 있다는 한자의 장점을 살리고 있다. 한자만 보면 되므로 상당한 속독도 가능하다. 다만 그 때문에 초등학교 한자 교육은 부담스럽다.
반면에 한국어는 ‘죄송하다’ ‘화창하다’ ‘창피하다’ 등 한자어원의 말을 많이 쓰면서 한자를 의식하지 않는, 베트남어와 유사한 방법이다. 심도있는 개념파악에는 약하다. 그러나 한자교육의 부담이 적다. 한자를 안쓰면 컴퓨터입력이 더 빠르다. 일장일단이 있다. 한국식은 한마디로 아주 공리적이며 초등교육상 효율성이 높다.
다만 선인들의 삶, 즉 역사를 접근하는데 문제가 있다. 하버드대 한국사교수가 북한 학자로부터 ‘우리는 주체성을 강조해 한자를 추방했지요. 조선사의 문헌연구에도 한자가 필요없습니다’는 말을 들었다며 손을 들었다는 몸짓과 함께 쓴웃음을 지었다.
동아시아의 공유재산인 한자를 살리지 못하고 이웃나라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는데 지장이 있다. 중국 일본의 언어나 역사 공부는 한자지식 없이는 힘들다.
도쿄(東京)대에 유학 중인 한국인이 주소를 쓸 때 자신이 사는 동(洞)을 한자로 쓸 수 없었다고 한다. 주위의 일본사람은 놀랐으며 본인도 창피했다. 나는 한국식의 공리성을 인정하지만 21세기 한국은 눈앞의 효율보다 높은 차원에서 조금 더 한자를 익히는 편이 득이 될 것이다.
미치가미 히사시(道上尙史·일본대사관 일등서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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