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충식/웃통벗은 여자선수

  • 입력 1999년 7월 14일 18시 36분


미국의 여자 축구선수가 골을 넣고는 웃통을 벗어제치며 환호하는 장면은 좀 ‘튄다’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유별난 노출벽이다” “아니다. 남자선수만 벗으란 법이 있냐”며 논란이다. 11일의 제3회 여자월드컵 결승전에서 미국의 브랜디 차스테인이라는 선수가 벌인 유니폼 벗어제치기를 둘러싼 입방아를 외신이 전한다. 해수욕장이 아닌 그라운드라는 이유로 브래지어 노출이 화제가 되는 것이다.

▽한자의 여(女)는 본시 연약한 몸매를 묘사한 상형문자다. 기록에는 덜 익어 부드러움(若) 유약함(弱) 여자(娘)가 모두 같은 계통이라고 되어 있다. 영어의 우먼을 거슬러 올라가면 얼굴을 가린 사람의 뜻으로 되어 있다. 와이프(wife)의 어원이 기혼여성의 얼굴을 천으로 가리게 한 관습에서 나왔고 와이프맨이 우먼이 되었다는 것이다.

▽반면 남자의 남(男)은 들(田)과 힘(力)이 합쳐진 의미다. 옛 영어의 우먼과 대칭되는 남자는 ‘무기를 가진 사람’이라는 웨펀맨(weaponman)이다. 그러나 말이 생기던 시절의 남녀구분은 이제 의미가 엷어지고 말았다. 차림새와 활동영역의 남녀 차이가 단어를 만들던 시절과는 너무 달라진 세상이다. 여자월드컵이 대인기인 것이 단적인 예다.

▽각종 직업의 ‘필드’에서 여자가 땀흘리고 무기를 들고 전장에 나서는 프로 여군도 적지 않다. 그래도 역사와 인습의 그림자는 여전히 남녀를 가르게 하는 것인가. 남자 축구선수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웃통을 벗어제쳐도 여자선수가 그러면 여자이기 때문에 얘깃거리가 된다. 문제의 선수 차스테인은 한달전 축구공 하나로 ‘부끄러움’을 가린채 잡지의 누드모델로 나온 적이 있어 화제를 부풀리고 있다. 그녀 또한 세상 ‘눈’들의 이중성을 꿰뚫어 보고 하는 행위는 아닌지.

김충식<논설위원>sear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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