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172)

  • 입력 1999년 7월 19일 18시 27분


다른 종족이 나타나면 과감하게 무리를 지어 덤벼들고 아무리 큰 왕개미도 잘못해서 남의 굴 근처에 갔다가는 당황해서 재빨리 달아난다. 하여튼 나는 사탕을 한 두어개씩 호주머니에 넣고 나가서 조금 빨고는 축축한채로 그들의 굴에서 적당한 거리에 떨어뜨려 주곤 했다.

가끔 담 가에 쪼그리고 앉아서 꼼짝도 않는 나에게 감시탑의 담당이 거기서 뭘 하쇼? 라고 물어올 적이 있었다. 그러면 나는 그냥 고개를 돌려 씩 웃는 얼굴을 보여 주었다. 그들도 수인들이 이 칸막이 안에서 무슨 버릇이 생기는가를 다 알고 있을테니까. 개미들은 사탕을 발견하면 일단 여럿이 달라붙어 몇 시간이고 꼼짝도 않고 진액을 빨며 녹이거나 일단 흙을 덮고나서 아래로부터 땅굴을 파서 사탕을 지하에 갈무리한다.

설탕가루는 앙증맞은 어금니로 한 알갱이씩 물어 나른다. 계절이 지나고 가을에는 여왕개미까지 날아올라 분가하는 것도 보게 된다. 그러다가 겨울에는 정말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게 되고. 구치소에서의 그 칸막이. 시멘트의 상자 안에서도 미물들의 아름다움이 빛나고 나는 차츰 단단해졌다.

이제 이곳 운동 공간은 그냥 공장 출역수들이 낮동안 비우고 떠난 사동과 사동 사이의 빈터였다. 나는 나중에 이곳에 자그만 채소 밭을 허락 받아 일구게 된다. 옥사 앞쪽은 온통 변소의 창문과 그 아래 오물이 묻은 시멘트 탱크가 불쑥 솟아나와 있다. 냄새는 나지만 그래도 차가운 대기는 싱그럽기까지 하다.

나는 그곳에서 교도소의 내벽을 따라서 걷다가 사동 벽을 돌아서 관구실이 있는 창가로 되돌아오는 산책 코스를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그늘에는 눈이 쌓였건만 내벽 아래 사방공사를 해놓은 비탈에는 늘 햇볕이 쪼여서 마른 풀 사이로 강인한 작은 풀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나는 운동시간에 되도록이면 담당과 아무런 논쟁도 하지 않는다. 그가 비록 하찮은 이야기를 꺼내도 그저 처음 배우는 어린이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 준다. 이 길의 여러 모퉁이에서 나는 계절에 따라 여러 가지 산 것들을 만나게 되었다. 송장메뚜기나 쥐며느리나 사마귀도 있고 귀뚜라미도 아주 큰 놈들이 있다. 참개구리도 있는데 장마철에는 작고 여린 청개구리가 변소 창문으로해서 독방에까지 기어들 때도 있다. 그리고 오물 탱크의 부근에는 무수한 땅굴이 보이는데 여기에 무섭게 크고 겁없는 쥐들이 산다.

회색빛의 집 쥐가 아니라 누런 갈색 털의 들쥐가 정착한 것 같다. 쥐들은 수인들을 보아도 좀처럼 도망가지 않고 빤히 눈을 맞추어 바라본다. 내가 한번은 비실비실하는 살찐 쥐를 밟아서 잡은 적도 있다. 그놈들은 어둡고 냄새나는 오물 탱크 속을 비집고 다니며 재소자들이 설거지 하면서 버린 음식찌꺼기를 골라 먹는다. 이들의 천적인 들고양이도 몰려오기 마련이어서 사동 부근 비상 벙커에는 여러 무리가 산다.

교미철에 이들이 앙탈하는 울음소리로 온 사동의 수인들이 깨어나 불평을 하고 뭔가 던지기도 한다. 어떤 고양이는 새끼 때부터 얻어 먹어 버릇을 해서 커서도 자립하지 않고 밥 때가 되면 늘 찾아가는 사동의 창가에 앉아서 먹이를 달라고 나직하게 울어댄다. 그러면 수인들은 꽁치 대가리도 던져주고 오징어도 던져주고 사입품인 소시지도 던져 준다. 그들은 고양이의 이름을 지어 부르고 고양이들도 제 이름을 부르면 응답하면서 돌아본다. 나는 이들과 운동 길에서 종종 부딪친다. 나도 고양이 한 마리를 몇 주 동안 길러본 적이 있다.

<글: 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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