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많으면 비리 소지◆
영국인들이 귀족 전문계층 노동계층이라는 계급사회를 받아들이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귀족과 전문계층으로 구성된 사회 지도층이 모범을 보이기 때문이다. 전쟁이 나면 맨 먼저 앞에 나가서 죽는 것이 사회 지도층이고, 도덕성과 업무에서도 국민에게 모범을 보이기 때문에 노동계층이 계급사회를 용납한다. 이처럼 능력있고, 정직한 지도층이 있었기 때문에 작은 섬나라 영국이 백년 이상 세계를 지배했을 것이다.한민족은 지도층이 제 역할을 못해 국민을 고생시킨 긴 역사를 가졌다. 먼 과거로 가지 않고, 이번 세기 일본에 의한 식민지화만 보더라도 가장 큰 잘못은 양반계층을 포함하는 지도층이 국제정세에 어둡고 내치(內治)도 잘못했기 때문이었다. 국사학자들은 조선시대에도 부패가 극심했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경기은행 로비 사건 등 자꾸 불거지는 지도층의 뇌물 또는 비리사건을 보면서 우리의 오랜 고질병이 아직도 고쳐지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부패에 대해서는 다양한 실증적 연구가 나오고 있다. 부패와 가장 관련이 큰 변수는 경제자유이다. 한 나라의 경제자유가 많을수록 부패 정도는 낮다. 반대로 정부 규제가 많을수록 부패의 정도는 심해진다. 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싱가포르 홍콩 대만 등 경제자유도가 높은 나라들이 부패정도가 상대적으로 낮다. 그 외에도 제도적 및 문화적 요인들이 작용한다.
부패의 결정요인이 복합적이기 때문에 접근방법도 다양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부패는 구조적이고 먹이사슬로 얽혀 쉽게 없어지기를 기대할 수 없다. 제도적 변화를 꾸준히 시행해나가면 사회가 조금씩 정화될 것이다.우선 규제를 풀고 경제자유를 보장해 주는 일이다. 인허가 등 정부의 인위적 시장개입을 축소해야 한다. 규제완화를 한다는 것이 10년이 넘는데 아직도 피부로 느낄 만큼 변화가 없는 것은 공무원 사회가 경직돼 있기 때문이다. 중앙정부의 각 과는 법률을 한 두개씩 무기로 갖고 있는 이익집단화됐고, 일부 세무관리 등 일선 공무원의 뇌물 수수도 고질적이다.
◆사회 시스템 정비를◆
규제를 근본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공무원 채용 및 승진 제도를 바꿔야 한다. 정부 부처가 이익단체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공무원 임용에서 문호를 개방하고, 업적 평가제도를 강화해 공무원 노동시장에 유연성이 생겨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5급 채용의 고시제도를 없애고, 7급이나 9급에서 채용해 경쟁과 업적평가를 통해 진급이 되도록 해야 한다.
부패방지법 등 법적 장치를 강화해 규범화해야 한다. 이 부문은 문화 및 사회관습과 엇물려 매우 어렵지만, 접대하고 대접받는 문화도 서서히 축소해나가야만 한다.
공사 구별이 더 분명해져야 한다. 싱가포르에서는 장관들이 20만달러 정도의 연봉을 받지만, 그 외에는 일절 판공비도 없고, 관용차도 공무가 아니면 사용할 수 없다. 장관이나 국회의원 등 고위 공직자가 받는 급여 외에 판공비 기밀비 등 과도한 대우가 축소돼야 한다.
물론 정치자금에 대한 분명한 구분과 관리가 이루어져야 한다.
부패축소의 정책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 새로운 화두로 등장한 ‘좋은 국가지배구조’를 만드는 일과 직결된다. 좋은 국가지배구조의 구성요소는 국민의 참여, 투명성, 법치주의, 이해당사자에 대한 책임과 효율성 등으로 집약된다. 이런 점에서 정부와 기업 시민단체 정치권 등의 견제와 균형이 정착돼야 할 것이다.
얼마전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한국인의 자화상은 “부지런하지만 정직하지 못하다”라고 한다. ‘머리좋고 부지런한’ 사람만이 출세하는 사회가 아니고, ‘정직한’ 사람이 인정받는 사회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
정구현<연세대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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