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최인호/「몽유금강 展」을 보고

  • 입력 1999년 7월 19일 19시 40분


1447년 4월20일.세종의 셋째아들이었던 안평대군 용(瑢)은 간밤에 도원(桃源)을 꿈꾸었다. 그 내용을 안견(安堅)에게 이야기해주자 천재화가 안견은 단 3일만에 안평대군이 꿈 속에서 보았던 무릉도원을 그대로 화폭 위에 재현해놓았다. 이 그림의 제목이 바로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글자 그대로 꿈 속에서 보았던 이상향을 펼쳐보인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 이상향이 꿈 속에서만 가능한 일일 것인가, 아니다. 화엄경(華嚴經)에 이르기를 ‘법기보살이 만이천의 권속을 거느리고 이상향을 이룬 곳이 바로 금강산’이라 하였으니 금강산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이상향인 것이다.

그러므로 한평생 금강산에 몰두했던 화가 정선(鄭)은 ‘금강산전도’를 그리고 나서 다음과 같이 제자(題字)했다.

‘나는 이 금강산의 일만이천봉을 하나같이 쳐부수어 새로운 금강한(金剛漢)을 만들어내겠다.’

금강한이라면 불교에서 말하는 수호신으로, 용맹한 금강역사의 신장(神將)을 가리키는 말. 우리나라 진경산수의 시조인 정선의 이러한 말이야말로 금강산이 이 민족의 태반임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1966년 화가 이응로(李應魯)가 문득 젊은 시절 가보았던 금강산을 떠올리며 선화(禪畵)와 같은 ‘몽견금강(夢見金剛)’을 그렸다.

최근에 금강산을 다녀온 화가 이종상(李鍾祥)은 ‘금강산은 모든 한글의 자음을 사용해서 그려야할 주제’라고 말하고는 금강산의 원형(源形)을 ‘ㄱ, ㄹ, ㅅ’의 자음으로 표현했다.

그것이 무엇이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3백여년 전 정선의 말대로 일만이천봉을 가루내어 나한을 만들든, 이응로처럼 꿈 속에서 금강을 보든, 이종상처럼 금강산에서 ‘ㄱ, ㄹ, ㅅ’의 자음을 보고 그것을 금강산의 원형질로 파악하든 금강산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 민족의 ‘진신사리’임에는 분명한 사실인 것이다.

그러한 금강산의 화두가 ‘그림으로 보는 금강산3백년’이라는 주제와 ‘꿈속에서 노니는 금강산(夢遊金剛)’이라는 제목으로 동아일보 광화문사옥 일민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정선 김홍도 심사정 한석봉에서부터 고희동 변관식 박생광 김은호 이응로를 거쳐 황용엽 이종상에 이르는 현대화가에 이르기까지 금강산에 관한 모든 그림과 자료들이 총망라된 희귀한 전시회인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으로 금강산을 보고싶은 사람은 그곳에 가라. 그곳에 가서 금강을 보라. 금강산을 보지 말고 금강을 보라. 금강산은 우리 민족의 눈을 뜨게하는 공양미 삼백석임에 틀림이 없으니 젊은이들이여, 심청이의 얼굴을 보고 싶어하는 이 땅의 목마른 젊은이들이여. 가라. 그곳에 가서 휘번쩍 눈을 뜨고 그대 자신의 진면목(眞面目)을 마주쳐보라.

최인호〈소설가·가톨릭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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