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중앙약사심의위원회는 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비아그라 임상시험 성적을 검토한 결과 이 약의 안전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임상시험 대상이 심혈관계에 이상이 없었던 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심혈관계 이상반응이 외국 결과에 비해 1.5∼3배 가량 눈에 띄게 높은 것으로 보아 이 약은 투약에 앞서 전문가의 평가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의사의 진단과 처방이 없는 약국판매는 매우 위험하다는 결론이다.
그러나 한국식품의약품안전청은 중앙약사심의위원회의 결론과 동떨어지게 안전성 문제를 덮어두고 예정된 수순대로 이 약을 ‘오남용우려 약물’ 정도로 지정해 약국판매를 허용하려 들고 있다.
안전성과 오남용 문제는 전혀 다른 사항이다. 안전성의 확보는 국민의 생명이 달려 있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 가치다. 이를 오남용 문제로 호도하려 한다면 법을 희화화하는 일이다. 오남용우려 약물로 지정해본들 판매제한에 아무런 실효성이 없다는 사실은 식품의약품안전청 당국자들이 더 잘 알고 있다.
이 약은 의사 진단 후 처방되는 미국에서조차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미국심장학회나 안과학회 등에서는 이 약의 투여 때 주의해야 할 여러 질환을 합의해 발표한 적이 있다. 약국에서 판매되면 이런 환자들을 어떻게 진단 선별할 수 있겠는가. 약국판매 후 희생자가 발생하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인가?
7월초 만난 한 일본 교수는 일본인들의 비아그라 수요가 예상에 크게 못미쳐 일본 화이자제약이 매우 우울하다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안전성에 관한 언론의 일관된 홍보와 의사들의 교육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동안 한국 언론은 줄곧 이 약의 효능만을 부각시키는 선정적 보도에 열을 올리지 않았는지 반성해야 한다.
안전성 문제가 제기된 지금도 임상시험 성적을 별것 아닌 듯 무시하려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안전불감증이 여기에까지 이르렀는가?
사회의 윤리적 인프라가 허약한 현실이나 정력 보신제에 열광적인 독특한 성문화를 감안할 때 비아그라의 약국판매가 허용되면 최음제처럼 성유희 목적으로 오남용될 것이라는 사실은 너무도 자명하다. 이는 필연적으로 비윤리적 성수요의 증가와 연결된다. 허약한 윤리기반이 가속적으로 붕괴되면서 성병, 더 나아가 에이즈의 확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콘돔 사용은 에이즈를 포함한 많은 성병의 가장 확실한 예방법이다. 그러나 이 약의 주요 소비층인 40∼60대는 대부분 콘돔 사용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이다. 콘돔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의 비윤리적 성수요 증가가 몰고 올 또 다른 파장이 우려된다.
행정당국과 한국 화이자제약은 발기부전 환자에게 삶의 기쁨을 제공해야 할 이 약이 도리어 한국 사회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사실을 놓고 고뇌해야 한다. 존경받는 세계 최고의 제약회사를 지향하는 화이자사가 한국에서 최음제 공급원으로 기억돼서는 안된다.
백재승(서울대의대 교수·비뇨기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