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경찰 있으나 치안은 없다

  • 입력 1999년 7월 20일 18시 41분


신창원의 2년반에 걸친 도피행적과 범행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경찰의 꼴이 말이 아니다. 경찰관이 신창원을 추적중 그의 동거녀를 성폭행하는가 하면 신은 동거녀 오빠의 폭행사건을 해결해 주기 위해 4차례나 검찰청 경찰서를 드나들며 경찰관에게 돈을 쥐어주면서도 무사했다. 신과 마주친 한 경찰관은 한방 얻어맞고는 빼앗긴 총만 놓고 가라며 체포를 쉽게 포기했으며 파출소 앞까지 신을 연행했다가 놓친 경찰은 ‘신창원이 아니다’며 허위발표를 했다는게 신의 주장이다.

부끄러운 공권력의 모습들은 이게 정상적인 사회인가를 되묻게 한다. 신창원의 일기장 내용에는 과장된 부분도 없지 않겠으나 그의 일기는 한마디로 경찰은 있으되 치안은 없다는 치명적 맹점을 보여준다. 우리 경찰은 사명감과 용기, 직업의식, 정직과 절제, 시민보호정신 같은 덕목을 어디에다 갖다 버렸는가.

신의 강도행각에 2억9000만원을 내주고도 ‘후환이 두려워 신고하지 못했다’는 서울 강남부자의 시민정신에도 문제는 있다. 하지만 경찰을 어떻게 믿고 신고할 수 있겠느냐고 항변한다면 경찰은 뭐라고 답변할 것인가. 1000만원을 강도당한 서울의 또다른 부잣집 역시 신고를 안했다. 부유층의 어떤 ‘이기심’ 탓으로만 돌릴 것인가. 눈앞의 신을 경찰이 7차례나 놓치는 일이 벌어지는 가운데 무고한 시민들은 계속되는 뒷북치기 검문검색에 시달려야 했던 사실도 경찰에 대한 불신을 가중시켰다.

경찰은 신이 도피중 강절도 88건에 5억4000만원어치를 털었다고 공식집계했으나 신고 안된 사건을 합치면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신고를 하면 경찰이 범인을 반드시 붙잡는 것은 물론 보복범행도 막을 수 있다는 확신이 서야 활발한 신고는 가능하다. 신이 당초 부산교도소에 수감되기 전 그를 신고했던 부산의 한 시민은 그의 탈옥 후 보복이 두려워 집을 여러차례 옮기며 불안한 나날을 보내오다 가정까지 파탄났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번 신창원 검거의 결정적 요인은 시민의 제보였다. 시민의 협조 없이 치안유지는 어렵다는 점을 재입증한 것이다. 만약 피해신고와 범인제보가 경찰에 대한 불신탓에 점점 줄어든다면 치안상황은 더욱더 나빠질 것이다. 지금의 치안시스템으로는 안된다. 신을 놓치거나 비리를 저지른 경찰관을 문책하는 것도 필요하나 더욱 중요한 일은 시민이 신뢰하는 새 치안시스템의 구축이다. 경찰은 수사권 독립 요구에 앞서 그에 걸맞은 수사체제와 능력을 갖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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