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174)

  • 입력 1999년 7월 21일 18시 47분


운동이나 작업을 하러 교도소의 높은 담장가에 나가면 종종 갓 나온 새끼 참새를 볼 수가 있었다. 어린 것들은 지붕이나 나무 위의 둥지를 나와 어미의 뒤를 따라 나르는 연습을 하러 나들이를 나오는 것이다. 담장 위까지 날아 올랐다가 일단 땅바닥에 내려앉으면 개중에는 다시 높고 매끈한 시멘트 담장 위로 날아오르지 못하고 벽에 몇번씩 부딪치면서 미끄러져 떨어지는 참새 새끼가 있기 마련이었다. 포르르 하고 날아 올랐다가 미끄러지는 꼴을 보면 누군가 달려가서 참새를 계속 벽쪽으로 몰아붙이면서 간격을 좁혀 맨손으로 잡는다. 담장 위에서는 어미 참새가 애가 달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울부짖는다. 수감자들은 이런 새끼 참새를 잡아다가 기른다.

독방에서 길들여진 참새를 여러 마리 보았는데 그냥 종종걸음으로 좁은 방안을 뛰어다니며 놀거나 수인의 어깨와 머리에서 졸기도 한다. 식사 때에도 주인의 밥 그릇에 함께 부리를 박고 먹는다. 주인이 나갔다가 돌아오면 명랑하게 우짖으며 그의 몸 위에 내려앉아 부리를 부빈다. 내가 어째서 참새는 열린 변소 창문으로 날아가버리지 않는 건지 물었더니 참새의 주인은 간단하게 대꾸했다.

날개를 잘랐으니까요.

그는 참새의 날개를 펼쳐 보여 주었다. 부채살처럼 펼쳐진 날개의 끝이 일직선으로 가지런하게 다듬어져 있었다.

좀 자라기만 하면 이내 잘라 주거든요.

나는 참새가 그 주인인 독방의 수감자와 같다고 생각했다. 나도 운동시간에 벽 가에 떨어진 새 새끼를 주워다 기르려고 해본 적이 있었다. 손을 동그랗게 말아서 새가 달아나지 못할 만큼만 쥐었는데도 할딱이는 여린 생명의 숨결이 손바닥에 전해져 왔다. 참새를 조심스럽게 감싸쥐고 방에 돌아와 우선 날개를 자르고 놓아 주었더니 방바닥에 처박혀 끊임없이 날개를 휘저었다. 아니 휘젓는 것이 아니라 파르르르 떨었다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매미나 여치나 파리 같은 무슨 벌레의 날갯짓처럼 깃을 떠는 소리가 대단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며칠 동안은 붕대 같은 것으로 날개를 감아 주어야 한다던가. 새끼 새는 밥알이나 물 한모금도 먹지않고 계속해서 날개를 거세게 떠는 소리를 냈다. 나는 잠결에서도 어렴풋하게 새가 날개를 떠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나는 두 다리와 부리를 위로 향한 채로 반듯하게 누운 새를 보았다. 새는 이미 죽어서 뻣뻣하고 차가웠다. 나는 어제 저녁까지도 따스하고 발딱거리던 새의 가슴을 기억 속에서 너무나 또렷하게 되살릴 수가 있었다. 자유스런 비상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본능이 그것을 죽였다. 나는 새를 손아귀에 쥐고 운동장에 나가 발 끝으로 잔디 밑을 파고 새를 묻었다. 그러고는 며칠 동안 우울했다. 새의 날개 떠는 소리가 무슨 문풍지 우는 소리처럼 귓가에 맴돌았다. 잘못 들었나 하고 귀를 기울여 보면 들리지 않았다.

한번은 고양이 새끼 한 마리를 얻었다. 교도소 주위의 들고양이들은 대개 이른 봄에 새끼를 낳는데 배가 하얗고 온몸이 새카만 검둥이라는 암컷은 하도 건강하고 생명력이 끈질겨서 두 해 동안에 네 배나 낳았다. 검둥이는 어려서부터 고시반 방 앞에 와서 아침을 얻어 먹고 점심은 이발부에 가서 얻어 먹었다. 아침에는 꼭 매점에서 파는 소시지 한 개만을 얻어 먹었고 점심 때에는 이발부의 식사가 아주 좋은 편이었다. 이발부는 고참들이 많고 취장과 가까워서 생선이나 멸치를 꼭 챙겨서 먹이고 있었다.

<글:황석영>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