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권력 핵심인사」는 누군가

  • 입력 1999년 7월 23일 19시 05분


경기은행 퇴출저지 로비사건과 관련해 22일 검찰에 구속된 이영우(李映雨)씨에 대한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이씨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설립한 아시아태평양 평화재단의 미주지사 이사를 사칭해 경기은행으로부터 1억원의 로비자금을 받아냈다는 것이 검찰이 밝힌 혐의내용이다. 검찰은 이씨가 아태재단 이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단순 사기사건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경기은행이 아무리 ‘퇴출’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몰려 경황이 없었다 해도 아태재단 이사라는 직함만 보고 선뜻 거액을 주었겠느냐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무엇보다 경기은행측 설명을 들어보면 이번 사건이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인상을 갖게 된다. 은행측은 이씨가 평소 ‘권력 핵심인사’와 가까운 사실을 알고 돈을 준 것이지 결코 속아서 준 게 아니라는 주장이다. 은행 나름대로는 확신을 갖고 로비를 부탁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인의 관심은 이씨와 가까운 ‘권력 핵심인사’가 과연 누구인지에 집중되고 있다.

이 점에 대해 검찰은 일단 유추의 단서를 내놓고 있다. 이씨가 대통령부인 이희호(李姬鎬)여사의 친정조카인 이영작(李英作)씨에게 접근을 시도하려했다고 검찰이 발표한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이씨가 이영작씨를 만났는지, 어떤 로비활동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아태재단 미주지사 이사장을 지낸 이영작씨와 이씨는 가까운 사이였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둘 사이에 어떤 형식으로든 만남이 있었을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마침 이영작씨가 어제 미국으로 출국했다는 소식이다. 이번 출국이 이 사건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궁금증을 더해주고 있다.

검찰은 시종 석연치 않은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여러 정황으로 보아 단순 사기로 볼 수 없는 여지가 많은데도 서둘러 사건을 매듭지으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검찰은 이씨에 대해 처음에는 아태재단 이사가 맞다고 발표했다가 곧바로 부인하는 해프닝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씨가 아태재단 본부 이사가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미주지사 이사가 아닌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또 진상 규명을 위해 이영작씨에 대한 소환절차를 거치지 않은 점도 마찬가지로 의아스럽다.

‘이영우 미스터리’까지 더해져 이번 사건은 더욱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다. 주혜란 경기지사 부인이 받은 4억원의 행방도 아직껏 밝혀지지 않고 있다. 주씨가 말을 계속 바꾸기 때문이라는 게 검찰 설명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뭔가 속사정이 있는 것이 아닌지 의문을 갖게 된다. 이번 사건은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혹이 많다. 검찰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도 반드시 실체가 규명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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