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임연철/디지털 TV

  • 입력 1999년 7월 23일 19시 05분


처음 숫자를 배울 때 손가락을 사용해 익히는 것은 동서고금이 마찬가지였다. 이같은 사실은 라틴어에서 손가락을 뜻하는 디지투스(dititus)가 요즘 영어로 손가락과 함께 숫자를 의미하는 디지트(digit)의 원형인데서 잘 나타난다. 디지트의 의미는 원래 손가락이었지만 형용사인 디지털이 우리 생활 주변에 깊숙이 파고든데서 알 수 있듯이 요즘은 숫자를 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LP음반을 사라지게한 콤팩트 디스크(CD)의 등장은 생활속에 파고든 디지털의 대표적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모든 소리를 숫자 0과 1의 조합으로 이뤄진 2진법으로 처리, 잡음을 제거한 CD의 등장은 디지털에 의한 음반제작의 혁명이었다. LP음반이 CD로 대치되듯 현재의 아날로그방식 TV도 디지털 TV로 대치될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최근 정부가 2001년 상반기를 목표로 디지털 TV의 조기 방송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

▽현재의 TV보다 2,3배 선명하고 CD수준의 음질을 가진 디지털 TV로 2002년 월드컵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신나는 일이다. 그러나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비유되며 큰 기대속에 출범했던 케이블 TV가 끝모르는 적자의 행진을 계속중이고 근거법이 없어 공중을 헛돌고 있는 방송위성을 생각하면 디지털 TV 계획 역시 말의 성찬이 되지않을까 염려스럽다.

▽미국과 영국이 이미 디지털 방송을 시작했고 다른 선진국들도 곧 시작할 태세여서 우리도 서둘러야 할 입장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디지털 방송의 주역을 담당할 TV 3사가 2조4000억원으로 추산되는 재원조달대책조차 막연하다는 소식이니 디지털 TV가 일정을 정해놓고 밀어붙이는 또하나의 졸속이 되지않을까 우려된다. 몇년째 제정이 지연되고 있는 새 방송법에도 디지털 방송시대를 대비한 조문이 불분명한 것을 보면 이같은 우려는 더욱 증폭된다.

〈임연철 논설위원〉ynch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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