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 칼럼]유재천/홍보보다 評 담긴 문화면을

  • 입력 1999년 7월 25일 19시 31분


요즘 우리 신문들의 문화면에 실리는 영화 공연예술 문학작품 등을 소개하는 기사를 보면 평(評)은 없고 홍보만 있다. 마치 특정 작품이나 작가 또는 감독 연출자 배우들을 홍보하기 위해 문화면이 존재하는 양상이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영화를 소개하는 기사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감독의 역량이 얼마나 잘 발휘되었으며 주연배우는 자신의 역할을 얼마나 잘 연기했는지, 또 시나리오의 짜임새, 음악 미술 의상 촬영 등은 어떠한지 등 영화의 작품성에 대한 ‘리뷰’, 즉 평은 간데 없고 오로지 특정 감독이나 배우를 화제로 부각시키거나 선정주의적 줄거리나 표현 등을 강조하는 데 빠져있다.

예컨대 동아일보 16일자와 23일자 문화면의 ‘웃음에 성역(性域)은 없다’와 ‘최민수 〈나? 영원한 터프가이〉’와 같은 기사가 그러하다.

영화기사만 그런 것이 아니다. 소설이나 시와 같은 문학작품은 물론 연극과 같은 공연예술, 심지어 출판 기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작품이나 저서의 내용과는 상관없는 화제만 만들어 낸다. 책이 출판도 되기 전에 작가나 저자와의 인터뷰를 곁들인 작품 소개를 대문짝만하게 싣는다. 그 뿐만 아니다. 연극의 첫 막이 오르기도 전에 연습장을 찾아가 연출자나 배우를 인터뷰하고 그들의 근황을 알리는 기사도 버젓이 게재한다.

그러나 정작 책이 출판되거나 연극의 막이 오른 다음에는 한 마디 말도 없다. 들리는 말로는 책이 출판도 되기 전에 미리 정보를 알고 그 내용을 소개하거나 저자나 작가와 인터뷰한 기사를 내는 것을 ‘특종’으로 여긴다고 한다. 그래서 신문마다 특종 경쟁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기자들의 그러한 의식이야말로 영화사나 출판사 또는 극단들의 홍보 전략이 먹혀들기에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신문은 그런 기사를 화제로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결과는 독자를 오도하는 것이 된다. 예컨대 동아일보 21일자 문화면에 실린 ‘무협지 틀에 동이(東夷)신화 담겠다―소설가 채영주 파격 글쓰기’라는 제목을 단 기사를 보자. 이 기사는 88년에 등단한 작가가 ‘장산부’라는 필명으로 ‘무위록’이라는 무협소설을 출간했다는 것이 화제라고 다룬 것이다.

그러나 독자가 보기에 과연 그것이 문단에서나마 얼마나 화제인지도 알 수 없을 뿐더러 무협지 틀에 동이신화를 어떻게 다루었으며, 그러한 글쓰기가 지니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등등은 알 길이 없게 되어 있다. 따라서 독자들의 책 선택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않는 그저 ‘만들어낸 화제’에 그치고 만다. 그래서 이 기사를 쓴 기자는 의식하지 못했을지 모르나 결국 홍보 효과밖에 더 주는 것이 없지 않았는가.

이렇게 영화 문학 공연예술을 다루는 기사들이 한없이 가벼워지고 흥미에만 영합해서는 독자에게 서비스하는 것이 하나도 없게 된다. 오히려 영화사 출판사 흥행회사 등을 위해 문화면이 봉사하고 마는 결과가 되며 독자의 선택을 오도하게 된다.

문화면이 진정으로 독자들의 문화 향수의 기회를 넓히고 올바른 선택을 위해 봉사하려면 ‘저널리즘 리뷰’를 부활시켜야 한다. 그것이 정보 홍수 속에서 옥석을 가려주는 신문의 구실일 것이다.

유재천(한림대교수·언론정보학)

◆알림◆

동아일보는 이번 주부터 지면을 감시하고 독려하는 옴부즈맨 칼럼 필진을 바꾸었습니다. 노장청(老壯靑) 세대와 여성계를 대표하는 새 필진이 매주 교대로 독자의 편에 서서 동아일보 지면의 잘잘못을 따집니다.

▽새 옴부즈맨

△유재천(劉載天·61·한림대 언론정보학 교수)

△송우혜(宋友惠·52·소설가)

△정갑영(鄭甲永·48·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박형상(朴炯常·40·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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