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밀레니엄/노벨상제정]인류에 큰빛 「파격 유언장」

  • 입력 1999년 7월 29일 02시 07분


「재산은 유언집행인에 의하여 안전한 유가증권에 투자한다. 그 이자는 매년 그 전 해에 인류의 복지를 위해서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들에게 상금형식으로 분배해야 한다….」

이 한 장의 유서가 후일 인류 과학발달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했던 사람은 없었다.

1896년 12월10일 다이너마이트 발명자 알프레드 노벨이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친필 유언장이 공개되자 노벨의 가족 친지들은 경악했다. 특히 조카들은 삼촌이 다이너마이트로 번 어마어마한 재산을 한낱 상금으로 기부한데 대해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실망한 사람은 비단 가족들뿐만이 아니었다. 스웨덴 국민도 노벨이 재산을 조국을 위해 쓰지 않고 온 세계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로 한데 대해 ‘비(非)애국적 처사’라고 비난했다.

이같은 논란 때문에 노벨의 유언이 실제 집행되기까지는 5년의 세월이 흘러야 했다.

1901년 12월10 노벨의 5주기를 맞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노벨상이 처음으로 수상됐다. 첫 수상자로는 X선을 발견한 독일의 뢴트겐(물리학상), 삼투압과 화학반응 속도를 연구한 네덜란드의 반트 호프(화학상), 디프테리아 혈청요법을 개발한 독일의 베링(생리의학상)이었다. 또 프랑스 시인 르네실리 프리돔이 문학상을, 적십자를 창설한 스위스의 앙리 뒤낭과 국제평화동맹을 창립한 프레드릭 퍼시는 평화상을 받았다.

노벨이 남긴 재산은 당시 스웨덴 화폐로 3323만크로나(미화 770만달러). 오늘날 물가수준(약 20배 상승)으로 환산하면 6억6460만크로나로, 한화로는 1850억여원에 달하는 거금이었다. 노벨재단은 그동안 유가증권과 부동산에 돈을 투자, 30억크로나(4200억여원)로 재산을 불렸고, 올 노벨상수상자에겐 부문당 790만크로나(약 11억원)를 분배할 예정이다. 노벨상을 받게 되면 세계적 권위와 명예는 물론 거액의 상금을 거머쥐는 셈이다.

지난 100여년간 노벨상은 과학자들에게 일생을 두고 도전해보고 싶은 ‘꿈’으로 자리잡았다. 과학자들은 노벨상을 받기 위해 자신을 채찍질하며 자기 분야의 라이벌과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노벨상이 과학 발전의 ‘기폭제’, 또는 ‘원동력’으로 평가받는 이유도 이때문이다.

그렇다면 노벨은 왜 자신의 유산을 상을 제정하는데 썼을까. 정확한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노벨은 1891년부터 95년까지 세차례에 걸쳐 직접 유언장을 작성했다. 다른 사람들은 유언장의 내용을 몰랐고, 노벨상 제정에 대한 어떠한 암시도 받지 못했다.

이때문에 노벨의 유언 배경을 놓고 구구한 억측도 많다.

그 중 하나는 노벨이 다이너마이트로 죽어간 많은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을 씻기 위해 자신의 재산을 공리(公利)적으로 사용했을 것이라는 추론. 이같은 추론에는 두 가지 에피소드가 따라다닌다. 하나는 1888년 프랑스 한 신문이 낸 어처구니 없는 오보(誤報). 노벨의 형의 죽음을 노벨의 죽음으로 잘못 안 이 신문은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노벨을 ‘죽음의 상인’으로 묘사, 노벨에게 충격을 주었다. 이것이 노벨의 인생관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1864년 발생한 폭발사고. 노벨이 운영하던 다이너마이트 원료 니트로글리세린 제조공장이 폭발, 동생 에밀 노벨등 5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고, 이것이 노벨의 유언장 작성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벨재단이나 노벨 연구자들은 이같은 우연성을 부인한다. 웁살라대 토르 프란스마이어 교수는 “노벨은 이상주의자였으며 개인이 큰 돈을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며 “오보사건이나 폭발사고, 그 어느 것도 노벨상 제정의 이유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1833년 스웨덴 북쪽의 작은 도시 트로스케에서 출생한 노벨은 ‘사업적 성공’과 ‘실패한 인생’이라는 극단적 양면이 교차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다이너마이트를 발명, 부와 명예를 한손에 움켜쥐었지만 내성적이면서 괴팍한 성격과 우울증 등 심신의 병약함 때문에 결혼조차 하지 않았다.

1896년 사망하기 직전에는 협심증과 심장발작으로 괴로워했다. 의사는 그에게 그가 평생을 두고 씨름했던 니트로글리세린의 복용을 권고했는데 노벨은 “니트로글리세린을 복용하라니,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니트로글리세린을 복용하면 내장이 폭발할 수도 있다”며 복용을 거부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부친 임마누엘 노벨을 따라 러시아 프랑스 등을 전전했던 그는 사망 당시 스웨덴 국적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의 이같은 인생역정이 그를 스웨덴이라는 작은 틀에 얽매이지 않고 전 세계로 눈을 돌리게 했으며 노벨상을 탄생시킨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스톡홀름〓윤영찬기자〉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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