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영화 「유령」 촬영감독 홍경표씨

  • 입력 1999년 7월 29일 18시 38분


“촬영 과정 자체가 ‘스모그의 생활화’나 다름없었죠. 겨우내내 400평이 넘는 세트장을 밀폐시킨 채 연기를 피우는데, 지긋지긋했어요.”

‘유령’의 홍경표 촬영감독(39). 잠수함에 물한방울 묻히지 않고 바다속 장관을 촬영한 ‘드라이 포 웨트(Dry For Wet)’기법을 국내 처음 시도한 감독이다.

수천m 아래 심해를 떠다니는 잠수함을 실제로 찍는 것은 불가능한 일. ‘크림슨 타이드’ ‘붉은 10월’ 등 할리우드영화의 생생한 수중 장면은 물 속에서 찍지 않은 것이 아니라 스모그로 공간을 채운 뒤 촬영하는 드라이 포 웨트 기법을 사용한 것이다. ‘유령’은 잠수함이 어뢰를 발사하거나 교전을 벌이는 25분의 장면을 이 기법으로 촬영해냈다.

우리 영화촬영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것으로 평가되는 ‘유령’에는 그러나 적지 않은 우여곡절이 구비구비 배어있다.

“작년 12월 첫 촬영 뒤 필름을 보니 정말 죽고 싶더라구요. 바닷속 같기는 커녕 흐릿한 안개 사이로 ‘장난감’이 둥둥 떠다니는 거예요.”

이 잠수함 장면이 관객의 눈에 장난처럼 보인다면 제작자나 감독 모두 수억원의 제작비를 포기하고 영화를 덮는 수밖에 없다는 분위기였다.

스모그의 농도를 맞추고,필터를 조절하고, 조명을 바꾸는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미니어처를 진짜 잠수함처럼 보이게 만드는 작업이 36일이나 반복됐다. 몸에 해롭지 않다는 오일로 만든 스모그였지만 방독면과 마스크는 필수였다. 촬영기간중 사용된 스모그의 양은 1리터 용기로 약 200여통이고 비용도 500만원이 넘는다. ‘목슴걸고 찍은’ 이 영화가 31일 관객의 평가를 받게 됐다.

89년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로 영화와 인연을 맺은 홍감독이지만 도제식으로 촬영기술을 배우는 ‘충무로 경력’은 짧다. 장편영화는 ‘처녀들의 저녁식사’(98년) ‘하우등’(99년)에 이어 이번이 세번째.

81년 고향인 경북 왜관의 양목고를 졸업한 그는 영화를 시작하기 전 모대학 경제학과를 1년간 다니다 그만뒀다.

비디오 작업이 유일한 즐거움이어서 백수를 자처하고 비디오에만 매달렸다. 92년부터 3년간 미국에 있으면서 그의 표현에 따르자면 ‘젊은 시절의 방황기’를 거쳤다.

“제대로 된 촬영공부는 안했고 미국 백수가 됐죠. 대신 영화를 숱하게 보고 스태프로 일하면서 현장의 분위기를 익히고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거의 독학으로 촬영기술을 배우다시피한 그의 영상은 색채감각이 뛰어나고(하우등) 실험성이 강하다는 평가. ‘처녀들…’에서는 현상과정에서 필름에 은 입자를 입혀 금속성의 느낌을 주는 실버작업을 시도하기도 했다.

홍감독은 “특수효과와 촬영 분야에서 할리우드와 우리를 비교하면 공장과 가내수공업같은 느낌”이라며 “‘유령’같은 작품을 자주 만들어야 그 격차를 좁힐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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