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老子) 가라사대 ‘덕을 두텁게 간직함은 갓난 아기에 견줄 수 있다…. 뼈는 약하고 근육은 여린데도 움켜쥠이 억세고, 암수의 교합을 모르면서도 고추가 일어섬은 정기(精氣)의 지극함이요, 종일토록 우는데도 목이 쉬지 않음은 조화의 지극함이다’ 하였다는데 혹시 노자도 나처럼 학교 근처로 자주 이사를 다녔던가.
중학교 근처에 이사를 갔을 때 새떼 소리는 사라졌다. 그 대신 운동장에서 환호하는 소리나 응원의 함성, 교사가 확성기로 외치는 소리는 자주 들렸다.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는 소리였다. 그래도 생기는 많이 남아 있어서 매일 공짜로 기운 센 생수를 얻어마시는 기분이었다.
언제부터인가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면서 중학교 근처에 사는 기분을 다시 느끼게 됐다. 배역에 따라 다소 다르기는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대부분의 연기자들이 거의 고함치다시피 대사를 외우는 것이었다. 청초한 여주인공이 첫사랑을 느끼는 상대에게 “나 사랑해?” 하고 핏대를 세워 윽박지르고 노년의 시아버지가 며느리에게 시장의 노점상처럼 소리를 친다. 표정 역시 극단적이고 몸짓도 과격하다. 텔레비전 드라마 안에서는 애 어른의 구별도 없고 모조리 중학생인 것처럼 느꼈다면 과장일까. 심지어 사극(史劇)조차 연신 효과음을 넣어가며 “전하! 전하!”를 외쳐대고 왕은 걸핏하면 아이처럼 소리를 지르며 울어댄다. 혹형(酷刑)과 비명, 전란(戰亂)의 횃불이 수를 놓는다.
이른바 주말을 장식하는 일회성의 쇼와 가요 프로그램에서 한층 더 목소리의 톤은 높아지고 몸짓과 색깔은 현란해진다. 사회자 자신이 아이처럼 “보여주세요!” 하고 소리를 지르고 이어 등장한 리포터는 신대륙이라도 발견한 선원처럼 거센 억양으로 고함을 쳐댄다. 물론 그 내용은 그에 걸맞게 초등학생들도 충분히 이해할 만한 자극적이고 원초적인 것들이다.
흑백 텔레비전에 나오던 드라마는 어땠는지. 어쨌든 지금보다는 조용했던 것 같다. 가수들은 어땠던가. 공감하자는 수준이지 들으라, 보라, 후회하지 마라고 강요하는 건 아니었다.
살아남으려면 재미있어야 하고 뭘 하는 것처럼 보여야 하고 눈에 띄어야 한다는 논리를 모르는 건 아니다. 시끄러우면 볼륨을 낮추면 되고 아예 싫으면 안 보면 그만이다.
노자 이어서 가라사대 ‘조화를 아는 것을 항상됨이라 하고, 항상됨을 아는 것을 밝음이라 한다…. 사물이 지나치게 장성하면 노쇠하니, 이를 일러 도에 어긋난다고 하는데, 도에 어긋나면 일찍 끝나게 된다’.
나는 학교 때문에 시끄러워서 못 살겠으니 이사를 가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성석제(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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