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언니예요.
정희가 서슴지않고 말했는데 그는 아주 정중하게 거의 구십도 각도로 내게 인사를 했습니다.
송영태입니다.
나는 그저 어색하게 마주 인사를 하고 이름도 말하지 않고 예예 하고 얼버무렸지요. 정희는 우선 자기 일부터 처리하려는 사람처럼 보였구요.
결과는 아주 좋아요. 별루 염려를 안해두 될 것 같아요. 공동이 있었는데 이젠 희미해졌구요. 그렇지만 당분간 투약은 더 해야 되겠어요. 내친 김에 아예 뿌리를 뽑아야 할 테니까. 위장이 좀 안 좋은 거 같든데… 뭐 그것두 전보다는 투약의 양이 많이 줄었으니까 호전되겠죠.
아아 다행입니다.
요즘 어떠셨어요? 컨디션이….
피로감은 그대로인데 열은 없는 것 같습니다. 저 안에서는 미열이 쭉 지속되었거든요.
얼마나 계셨죠?
삼년 반입니다.
어머, 벌써 그렇게 되었나요? 많이 사셨네.
뭘요, 남들 군대에서 썩은 세월하구 비슷하지요.
나는 점점 그들과 합석해 있기가 거북스러워졌어요. 정희와 그 사람이 하는 이야기가 전혀 낯선 내용이 아니었거든요. 아니 오히려 그건 당신을 상기시키는 고통스러운 얘기일 수 있었지요. 아마 그는 감옥에서 나온 지 얼마 안되었을테고 정희의 이야기 내용으로 보아 무슨 결핵이나 그런 병을 앓았던 것 같았어요.
형은 다음주에 외박 나온다구 전화했어요. 송 선배 건강이 어떠냐구 물어서 지금 말씀드린 것처럼 아주 좋다구 그랬죠. 하지만 방심하시면 안돼요. 적어도 반년 동안은 조심을 해야 할 거예요. 참, 그러구 복학되셨죠?
창피하게 그렇게 된 모양입니다.
우리 언니 그 학교 대학원 다녀요.
아 그래요? 반가운데요.
언닌 그림쟁이예요. 나처럼 썰렁하지 않아요.
우리는 저녁을 먹고 맥주를 몇 병 비웠습니다. 나는 송영태라는 이가 아주 성실한 사람일 거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렇지만 너무 진지한 게 변함이 없어서 재미는 별로였는데, 게다가 그는 철학도래요. 세상에 철학이라니. 누가 밥 먹여 주나. 남의 말 하구 있네. 미술사는 또 누가 떡이라두 먹여 줄까봐. 송영태는 아마도 시쳇말로 교육방송일 거예요. 서두르지 않고 진지하게 차근차근 논리적으로 상대를 설득시켜 나가겠지요.
정희와 만나고 나서 그 다음주던가 저녁 시간은 오히려 내게는 눈코뜰새없이 바쁜 시간이었는데 송영태가 화실로 찾아왔어요. 여름 한 철은 실기생들이 몰려오는 때라 이젤을 스무 개나 늘어놓아야 했거든요. 하여튼 늦은 시간까지 화실에 붙어 있어야 했어요. 석고상 앞에서 소묘를 하는 아이들의 등뒤로 돌아다니며 말도 걸어 주고 목탄도 대신 잡아 고쳐 주고 하는데 조수를 하는 미대생이 밖에 손님이 왔다고 일러 주는 거예요.
<글: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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