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간의 고소고발이 우리처럼 많은 나라도 없다고 한다. 분별없는 명예훼손도, 거기 법적 대응으로 맞서는 것도 모두 몽니와 닿아 있다. 집권하고 칼자루만 쥐면 야당을 짓누르는 여당의 몽니, 그러니 국회 박차고 거리에서 이판사판의 극한투쟁을 벌인다는 야당식 몽니. 몽니가 몽니를 부르고 정치에 대화와 타협의 여지는 없다. 미국 정치나 일본 정계의 움직임을 분석하는데 몽니나 심술이 요소가 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
▽정치가 몽니판이라면 이 나라 국민은 정서(情緖)를 좇아 움직인다. 국민정서에 반하는 일은 약이 되더라도 처방이 되기 어렵다. 도무지 이성이나 과학이 아닌 위태롭기 짝이 없는 정서를 좇아 이리저리 표류한다. 정서대로만 된다면 결과적으로 나락에 굴러 떨어질지라도 좋다는 식이다. 무슨 경제정책도 지역정서의 눈치를 살핀다. ‘지역정서’때문에 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다.
▽몽니나 정서 같은 것이 정치와 정책을 좌우해도 되는 것일까. ‘인간을 이끄는 것은 감정이지만 인간을 만드는 것은 이성’이라고 한 것은 루소였다. 인간성은 본시 용수철같고 폭풍같은 조야(粗野)한 데가 있다. 그런 인간 저 바닥의 약점을 추스르고 조절하는 것은 바로 이성이라는 브레이크다. 브레이크 약한 정치가 충돌 사고가 잦은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몽니와 정서로만 흐르지 않도록 해야 정치도 나라도 앞날을 기약할 수 있지 않을까.
〈김충식 논설위원〉sear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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