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천▼
3년 전과 똑같은 지점에서 똑같은 과정을 거쳐 비슷한 규모의 피해가 났다.
96년 한탄강 지류인 차탄천 등 임진강 지천이 범람하면서 연천읍 신서면 백학면 미산면 등이 물에 잠겼다. 연천댐이 범람하면서 한탄강 하류인 청산면 일대가 순식간에 물바다로 변했다.
이번에는 이들 지역 외에 군남면 등 한탄강 인근 지역 2000여 가구가 침수됐고 3000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 지역 수방대책의 최대 걸림돌은 연천댐. 이 댐은 당초부터 전기발전용으로 건설돼 홍수조절 능력이 없다. 발전용이기 때문에 평소엔 여름철에도 저수량을 만수위까지 유지한다. 그러다 보니 여름철 장마나 집중호우 때면 홍수를 조절하기는커녕 수재를 일으키는 주범이 돼 버리는 것.
주민들도 아예 댐을 없애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연천군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토목학회의 연구 결과 댐 때문에 높아진 강물 수위는 3㎝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따라서 제방만 보완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
그러나 연천군청측의 이런 주장은 이번에도 연천댐의 제방 일부가 유실돼 엄청난 수재를 야기함으로써 설득력을 잃게 됐다. 주민의 주장을 일부 이재민의 원성으로 치부한 권위주의 행정이 낳은 인재인 셈이다.
한편 연천군은 백학면과 군남 미산 왕징면 일대가 물속에 잠기는데도 경보사이렌을 울리지 않아 백학면 학곡리 주민 200여명 등 1000여명이 불어난 물에 고립되기도 했다.
▼동두천▼
지난해 시내를 관통하는 신천이 범람해 생연 보산 상패동일대가 침수됐던 동두천은 올해도 유사한 피해 사례가 재현됐다.
신천의 최대강폭은 120∼130m지만 소요교∼상봉암교 사이 6㎞는 하천폭이 90m로 좁아 병목현상을 일으킨다.
동두천시는 지난해 수해를 입은 뒤 4.8㎞구간에 대한 하천폭 넓히기와 제방쌓기 준설공사 등에 착수했지만 예산이 늦게 배정돼 400m구간의 하천폭을 넓히는 데 그쳤다.
저지대 주민들은 신천에 배수펌프장을 만들 것을 요구했지만 동두천시는 “예산도 없지만 펌프장을 건설하려면 저지대 주민들을 이주시켜야 하는 등 어려움이 많다”고 묵살했다. 결국 강폭이 좁아진 지점에서 물이 범람하면서 이번에도 보산동과 중앙동 일대 2000가구가 침수됐다. 늑장공사에 배짱행정이 낳은 인재인 셈이다.
신천의 동광교도 문제다. 교량의 높이가 너무 낮아 신천물 흐름을 가로막고 있는 동광교는 올해 안으로 철거될 예정이었으나 예산이 늦게 책정되는 바람에 착공조차 하지 못했다. 결국 동광교는 신천이 범람하는 데 일조했다.
경기북부환경운동연합 안창희사무국장은 “북부지역 하천은 바닥은 높고 폭이 좁아 웬만한 비에도 넘칠 수 있다”며 “무분별한 개발로 물이 땅으로 스며들 여지를 없앤 것도 큰 요인”이라고 말했다.
▼파주·문산▼
이번 비로 파주시내를 가로지르는 설마천과 파주읍 연풍리 갈곡천의 둑이 무너지면서 파주읍과 적성면 법원읍 일대가 물바다로 변했다. 이재민만 3489명이 발생했고 군장병 2명이 산사태로 숨졌다.
1년 전에는 금촌동과 파주 법원읍 일대 저지대주택이 지붕만 남을 정도로 물바다로 변했었다. 조리면 봉일천리 고산천의 고산교가 붕괴됐으며 연풍리 주라위삼거리도 물에 잠겼었다.
3년 전의 수해를 교훈삼아 지난해에는 물난리를 겪지 않았던 문산읍도 이번 비에는 여지없이 유린됐다. 문산읍을 싸고 도는 동문천의 수위가 높아지면서 범람해 문산철교 쪽의 둑을 통해 문산읍으로 쏟아져 들어온 것.
따라서 파주지역 주민들의 숙원사업은 동문천의 제방공사. 집중호우 때마다 동문천이 넘치는 바람에 물난리를 겪었기 때문이다. 동문천 물이 넘치면 곧바로 문산읍으로 들어오는 것은 문산읍이 분지형태이기 때문.
파주시는 96년 수재 이후 10억원을 들여 동문천 강폭을 33m에서 65m로 넓혔다. 제방높이도 8.14m에서 10.85m로 높였다.
문제는 경의선이 지나고 있는 철로지점의 제방. 파주시는 제방공사를 빨리 끝내고 싶었지만 철도청이 복선화 공사 때 제방을 높이자며 늦추었던 것. 게다가 이 지점의 복구비를 철도청이 갖고 있어 파주시로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결국 3년 전 무너진 지점이 올해도 무너졌고 파주시는 물바다가 됐다.
게다가 동문천은 주변 농지보다 하상(河床)이 높은 천정천(天井川). 따라서 강폭 확장 및 제방공사 이외에도 당연히 준설공사가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파주시는 준설공사는 아예 계획하지도 않았다. 필요성은 느꼈지만 예산이 부족했다는 게 파주시 담당공무원들의 설명.
시가 나서지 않자 일부 주민들은 97년 스스로 준설작업을 하기도 했으나 준설토에 염분이 많아 퍼낸 흙을 농지에 사용할 수 없어 중단했다.
국토개발연구원 정일훈박사는 “파주의 신개발지역은 하천바닥보다 표고가 낮아 도로나 구릉지 등에서 물이 밀려내려오면 침수될 수밖에 없다”며 “물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대대적인 방재행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파주지역의 빗물펌프장 위치도 문제였다. 파주시는 홍수에 대비해 4개의 빗물펌프장을 갖췄다. 그러나 하천제방이 무너지면서 펌프장이 침수돼 펌프가동이 중단됐다. 제방이 무너질 경우까지 감안해야 한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를 고려 하지 않은 것이다.
〈연천·파주·수원〓권재현·선대인·박윤철·박종희기자〉parkhek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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