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비가 퍼붓던 2일 최시인은 오랫만에 충북 영동의 집을 떠나 서울나들이를 했다. 이산 김광섭시인을 기념해 제정된 이산문학상의 99년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오랫만에 지인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수상작은 98년 발간된 ‘굴참나무 숲에서 아이들이 온다’(문학과지성사). 시상식은 10월20일.
64년 데뷔. 66년 이후 10년간 시작 중단. 76년 첫 시집 ‘우리들을 위하여’를 비롯 다섯권의 시집을 냈지만 상과는 그다지 인연이 없었다. 모처럼의 수상이었지만 소감은 그다운 것이었다.
“시가 구원의 형식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저 마음을 의지할 작은 무엇이라고만 여겼지요.”
모든 시인들이 ‘시야말로 최상의 예술양식’이라고 입을 모아도 그는 “시는 우리 시대와는 너무나 멀리 있고 낡은 장르”라고 말한다. 슬픈 일이지만 자본과 과학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시가 더 이상 방향을 제시할 힘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코 패배의식에 젖은 자탄이 아니다.
“80년대 그 암담한 시대에 나는 이 어둠 속에서 우리 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 것은 시라는 꽃 한송이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치와 경제가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그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 줄 수 있습니까?”
‘예언자로서의 무게를 덜어내고 대신 지친 이들의 마음을 위무하는 작은 진실이 되는 것’. 이것은 그의 시가 변모해온 행로이자 그가 살아온 길이기도 하다.
“70년대 나는 시가 사회의 역사적 발전에 한 몫을 담당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시를 썼습니다. 그러나 80년대를 거치며 그런 생각을 버렸습니다. 5·18을 거치며 절망했기 때문이지요. 그런 역사를 겪은 뒤 목소리 높이는 사람만 있고 ‘절망했다, 지쳤다’고 말하는 지식인이 없다는 것이야말로 위선이 아닐까요?”
심사위원인 평론가 김인환교수(고려대)는 “최하림은 시밖에 모르면서도 시라는 교회를 믿지 않는다”고 평했다. 그러나 ‘시보다 사람과의 만남, 내 아이들이 더 소중하다’는 그의 시는 스미듯 읽는 이의 마음을 적셔온다.
‘…나는 詩 써서 시인이고 싶었건만/오늘은 느티나무 아래 시들을 모아/불태우네 점점이 날아가는 새들과 아직은 체온이 남은 기억들 그리고/지평선에 떠도는 그림자들//나는 詩 써서 시인이고 싶었건만…’(‘시를 태우며’ 중)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