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박윤철/저승길도 물난리라니…

  • 입력 1999년 8월 3일 19시 27분


“하늘도 정말 무심하십니다. 살아서 물난리로 그리 고생하신 분을 결국 가시는 길까지 이렇게 힘들게 보내시다니….”

이번 수해로 읍 전체가 물에 잠긴 경기 파주시 문산읍에서는 3일 오전 상을 치르던 도중 물난리를 당한 한 상가(喪家)의 ‘수상운구행렬’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문산읍 한진아파트에 사는 조홍연씨(52)는 30일 돌아가신 부친(83)의 상을 치르던 도중 망부(亡父)의 슬픔을 넘어 또한번 망연자실하고 말았다. 밤새 내린 폭우로 아파트가 물에 완전히 고립돼 버린 것이다.

하지만 전기와 수도마저 끊겨 밤이면 더욱 음산한 상가에 시신만 놔두고 유족들만 대피할 수도 없었다. 20여명의 조문객들이 빗길을 뚫고 문상을 와주었다.

생전에 물난리로 고생을 하던 고인이 마지막 가는 길까지 물때문에 편히 가실 수 없게 된 현실에 유족들은 자신들의 잘못인양 괴로워했다.

이틀이 되도록 아파트 2층까지 올라온 물이 좀처럼 빠질 기미를 보이지 않자 유족들은 백방으로 유해를 옮길 방안을 강구했다.

육군 전진부대에 도움을 요청해 군용보트가 5대나 동원된 가운데 시신을 집안에서 옮기기 시작한 것은 3일 오전 10시경.

운구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고인의 유해가 앰뷸런스에 실리자 남은 유족들은 바닥에 주저앉아 가슴을 쓸어내렸다. 유족들은 “이제는 물난리 없는 곳에서 영면하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박윤철기자〉yc9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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